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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칼럼】 『삼국사기』 불신론과 ‘임나=가야설’ 비판 (1)

지난 2017년 9월 28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가야문화 복원을 통한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36회 국학원 정기학술회의에서 '식민사학 해부하기 - 가야사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이덕일 소장(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발표 내용을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삼국사기』 불신론과 ‘임나=가야설’ 비판 (1)
                                     

 

1.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발명

일본인 학자들이 󰡔삼국사기󰡕를 위서(僞書)로 몬 것은 정한론(征韓論)의 일환이었다. 메이지〔明治〕 시대 일본인들은 한국 점령이 단순한 군사침략이 아니라 과거사의 복원이라는 명분 차원에서 만든 것이다. 정한론의 핵심은 과거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식민지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 식민지가 가야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가야=임나설’을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기술된 임나 및 임나일본부는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정한론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은 서기 369년에 가라 7국을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562년까지 지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설의 정치적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일본이 2세기 이상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면 황순종 선생이 『임나일본부는 없었다』에서 지적한 것처럼 󰡔삼국사기󰡕 본기 및 󰡔삼국유사󰡕에 어떠한 형태로든 그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기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임나 및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서기󰡕는 연대부터 맞지 않을 정도로 조작과 변개가 심한 역사서라는 사실은 메이지 때까지는 물론 지금도 일본 극우파의 침략사관을 추종하는 일부 한·일 고대사학자를 제외한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일본인 학자들도 그 전까지는 󰡔삼국사기󰡕·『삼국유사』·『동국통감』 등을 근거로 󰡔일본서기󰡕에 수록된 연대의 진위를 판정해왔다.

정한론 등장 전까지는 한국은 물론 일본의 어느 학자도 『삼국사기』를 위서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임나일본부설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삼국사기󰡕는 가짜가 되어야 했다. 이것이 ‘󰡔삼국사기󰡕 불신론’, 또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시작이었다.
 
19세기 말 ‘가야=임나’를 주장했던 나카 미치요(那珂通世:1851~1908)가 󰡔삼국사기󰡕 불신론을 시작했다는 자체가 󰡔삼국사기󰡕 불신론이 임나일본부설과 궤적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나카 미치요는 ‘가야=임나설’을 주장하고, 고구려는 6대 태조대왕, 백제는 12대 계왕, 신라는 16대 흘해왕 이전의 기년이 조작되었다고 말했지만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일의 어느 식민사학자도 『삼국사기』와 타 사료에 대한 교차검증 등의 역사학적 방법론의 결과로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하지 않았다. 유일한 근거는 ‘󰡔삼국사기󰡕를 믿을 수 없다’는 자신의 머릿속 생각뿐이었다. 이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아직까지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하나뿐인 정설, 또는 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세계 역사학계의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2.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한 이유

󰡔삼국사기󰡕 불신론을 가장 먼저 제창한 인물은 나카 미치요지만 이것이 마치 이론적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체계화한 인물은 와세다대와 만주철도 출신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였다. 그 후 일제 패전 후 『임나흥망사(1949)』를 저술해 임나의 강역을 전라도까지 확장시킨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등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적극 가담했다.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의 「신라·고구려·백제 본기」 모두를 비판했는데, 여기에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三國史記の新羅本紀について)」만 비평 대상으로 삼는다. 임나일본부와 직접 관계되는 나라가 신라이기 때문이다. 쓰다 소키치는 1919년 간행한 『고사기 및 일본서기의 신연구(古事記及び日本書紀の新硏究)』에서 고대 야마토왜가 신라를 정복했다고 주장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는 그 부록 성격의 논문인데, 이렇게 시작한다.

“조선반도의 고사(古史)로서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 특히 신라본기(新羅紀)의 상대(上代)의 부분에는, 소위 왜(倭) 혹은 왜인(倭人)에 관한 기사가 자못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삼국사기) 기사는, 기기(記紀: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더불어 우리(일본)가 상대사를 천명(闡明)하는 데에 귀중한 사료인 것 같이 생각되어진다(쓰다 소키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

윗글은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연구한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자체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라본기」가 왜(倭)에 관해서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연구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 뒤따른다.

“그러나 진실로 삼국사기 상대(上代)부분을 역사적 사실의 기재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은, 동방(東方)아시아의 역사를 연구한 현대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이론(異論)이 없기 때문에, 왜에 관한 기재 역시 마찬가지로 사료로서는 가치가 없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얼마나 신용하기 어려운가를 정리해 설명하는 것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신라본기에 관해서 그 대요(大要)를 적어, 독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쓰다 소키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 상대 부분을 역사적 사실의 기재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했다. 그래놓고는 ‘그런데 얼마나 신용하기 어려운가를 정리해 설명하는 것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삼국사기 상대 부분, 즉 초기부분은 역사적 사실을 적은 것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왜 인정할 수 없는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삼국사기󰡕를 가짜로 모는 학문적 논리가 없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자신이 처음으로 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는지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는 삼국사기 상대부분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이론이 없다’고 모순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모순된 논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일의 식민사학자들의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기도 하다. 결국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수록된 ‘왜(倭)’에 관한 내용이 자신의 머릿속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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