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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는 마지막 길에 시천주주를 읽었다

윤봉길 의사는 15세에 배용순과 혼인했다. 그의 장인은 동학의 접주 배성선이었다. 배성선 선생은 동학농민혁명 홍주성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총상을 입고 숨어 지내며, 뒷날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한 천도교의 덕산접주였다.  

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 주영채 회장의 글에 의하면 윤봉길은 장인으로부터 동학을 접하고 크게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윤봉길의 청년시절은 장인으로부터 영향받은 동학 사상이었다. 

결혼 후의 윤봉길은  새벽에 청수를 올리고 시천주주 주문을 읽었다고 한다.  만주로 망명하기 전,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의 ‘농촌계몽할동’ 기록을 보면, 그가 동학에 심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개벽지』를 탐독했으며, 월진회(月進會)를 운영하였다는 사실에서, 윤봉길 의사가 동학을 하고 동학도 였음을 알 수 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로  일본군 대장을 척살하고 총살을 당하기 전 형틀까지 20여m를 당당하게 걸어가며 염불 같은 것을 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가 마지막에 외운 것은 염불이 아니라 시천주 주문이었다.


*시천주조화정 명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 ...... 매헌은 장인인 배성선의 영향으로 천도교에 입문하였고 사형장에서도 이 주문을 외웠다. (매헌이여,대한의 태극기여, 신익선 저, 정미선 역, 예산문화원 출판, 254쪽) 

윤봉길 의사는 시천주 주문을 마지막으로 외웠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시천주조화정영세물망만사지 천주시여 대한의 독립을 염원합니다”라고 기도하고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

사진 = 매헌 윤봉길 기념관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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