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하라 신궁(橿原神宮)은 일본 나라현 가시하라시에 있는 신사이다. 신궁은 메이지 23년인 1890년에 일본의 첫 번째 천황인 신무 천황이 황위에 오른 곳으로 여겨지는 가시하라 궁 부지에 세워졌다.

일본서기에는 이 가시하라 섬이 일본의 건국지로 묘사되어 있다. 신무천황은 약 2,680년 전인 기원 원년에 일본의 첫 번째 천황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있다.. 신무천황은 규슈의 다카치호 궁전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네비야마 남동쪽 기슭에 가시하라 궁전을 건설하여 번영하고 평화로운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고 신궁 홈페이지는 전하고 있다.
1월 1일부터 며칠 동안의 참배자수는 100만명이 넘으며 나라현내 최다의 참배자수를 기록하고 있다. 소재지는 나라현 가시하라시 구메초 934 (奈良県橿原市久米町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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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천황인 신무 천황을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성지처럼 여겨진다. 메이지 천황의 칙령으로 세워진 신궁으로, 신궁 동북쪽에는 진무 천황의 능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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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약 2,680년 전인 기원 원년에 일본의 첫 번째 천황으로 왕위에 올랐다. 여기에는 일본기원이 적혀 있다.

일본기원 2684년은 올해 2024년을 말한다. 초대 천황인 신무 천황의 즉위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기년법. 신무 천황 즉위기원(神武天皇即位紀元), 줄여서 신무 기원(神武紀元), 또는 황력(皇曆) 등으로 불렸다. 환산방법은 서기에 660년을 더하면 된다. 패전 이후로는 일본 사회가 연호 아니면 서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황기皇紀가 잘 쓰이진 않지만, 황기皇紀에 대한 법령은 아직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법적으로는 유효하다.
3세 가륵단군때 (BCE 2173) 두지주의 예읍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곳 추장 소시모리를 처형하였다. 이 소시모리의 후손으로 36세 매륵단군때의 인물인 협야후 배반명裵槃命이 일본으로 건너가(BCE 667) 그곳을 정복하고 스스로 천왕이라 칭하였는데 이 배반명이 곧 일본의 초대왕 진무이다. [일본서기]는 진무가 규슈 섬 일향에서 출발하여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BCE 660년에 천왕으로 등극하였다고 말한다. 진무의 천왕 즉위 사건과 겨우 7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배반명의 천왕 참칭 사건 이 두가지 사건은 동일한 사건인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
36세 단군 매륵 재위 38년 갑인(BCE 667)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셨다. 12월에 삼도를 모두 평정하였다. - 단군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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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일본서기』에도 초대 신무왕(神武王)의 젊은 시절 이름은 '협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환단고기』의 기록과 일치하며, 단군조선의 협야후가 일본의 초대 왕 신무왕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일본천황가의 뿌리가 도래인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 또한 환단고기가 유일하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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