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상과 종교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다
한국의 사상은 종교와 연결된다. 절대자로서의 종교를 가져보지 못한 것이 한국의 종교다. 유학이 유교라는 종교로 발전한다. 도학이 도교로 발전한다. 부처의 깨달음이 가르침으로 종교가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근원적인 정신세계였던 건국이념인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이 종교가 된다. 사상과 종교가 분리되지 공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상이 종교고, 종교가 사상이다.
한국의 사상은 종교와 맥을 같이 한다는 면에서 특징적이다. 서양에서는 종교와 사상이 분리된다. 서양의 종교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담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한국의 종교에는 내세가 없다. 종교의 핵심적인 면을 두고 말할 때 천국을 가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극히 인간적인 종교다.
유교의 공자는 “내가 지금 사는 세상에 대한 것도 다 모르는데 내 어찌 죽음의 세계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한다. 그리고 불교도 마찬가지로 근원은 깨달음이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원효의 말이 유효하다. “죽지 마라, 다시 태어나기 어려우니. 다시 태어나지 마라, 죽기 어려우니.” 윤회하지 말고 깨달아서 윤회로부터 벗어나라는 이야기다. 각성, 즉 깨달음의 세계가 불교가 추구하는 세계다.
우리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불선과 단군조선의 개국이념 같은 것이 한국의 사상을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의미가 마루종宗에 가르칠 교敎로, 높은 뜻을 가르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양의 종교와 우리의 종교는 교육적인 측면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종교와 사상이 분리되지 않은 것이 한국의 사상이다. 정신의 고양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신의 사상이다. 사유와 성찰을 통해서 각성의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한국의 사상이고, 종교다. 다르지 않고 하나의 구슬 안에 꿰진다.
우리의 사상은 동북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교와 불교를 함께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 있다. 정신적인 고양을 통해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홍익인간의 이념이다. 모든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는 평등을, 이념의 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평등에 무게 중심이 있는 잘 사는 사회의 구현이 우리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 잘 살자는 건국이념이 아니라 공존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건국이념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다 같이 어우러져 잘 살자는 홍익 같은 위대한 이념을 가진 나라가 있나 찾아보라.
반면 100여 년 전에 들어온 서구사상인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물질에 중심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는 물질의 소유에 대한 개념을 확실하게 한 사상이다. 물질을 개인이 독점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사상이다. 경쟁을 통해서 강자가 독식할 수 있는, 그래서 빈부를 인정하는 제도다. 인류 역사상 강자의 독식을 인정한 가장 냉혹한 사상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공산주의는 물질을 공동생산, 공동분배 하여 나눔을 우위에 둔 사상이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자는 평등에 방점을 찍은 사상이다. 사회주의는 사회공동체가 공동으로 생산과 나눔을 하며 살고자 하는 사상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같은 뿌리를 가진 물질의 생산과 나눔을 정의한 사상이다. 서구사상은 유럽이라는 한 토양에서 나온 물질에 대한 정의를 내린 물질주의 사상이고, 우리의 고유사상은 평등에 무게를 둔 정신의 사상이다.
정신의 고양과 각성을 정의한 우리의 유불선으로 대표되는 사상과 물질의 생산과 소유를 다룬 자본, 공산, 사회주의 사상이 한반도에는 다 같이 들어와 있다. 안타깝게도 북한에는 공산주의 사상만, 남한에는 자본주의 사상만 들어와 있다. 이질적인 사상이 한반도에서는 공존하고 있다. 남북한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한경쟁에 있다
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치가 끝나가고 있다. 유일하게 공산주의를 원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곳이 북한이다.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와의 화합을 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특수성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만을 받아들인 나라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이 자본, 공산, 사회주의가 태동한 곳이라 세 사상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있다.
유럽인의 생각에는 세 사상이 다른 것이 아니고 서로 공존한다. 원래 원시 공동체에서는 이 세 사상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 정상이다. 유럽인이 이주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는 당연하고,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로 전파된 사상도 마찬가지로 섞여서 전파되었고 일부국가에서는 자본주의 우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우선을 내세웠지만 공존을 기본으로 한다.
하나만의 순혈주의를 고집한 나라의 경우는 드물다. 유일하게 남한과 북한만이 오직 강하게 남한은 자본주의만을, 북한은 공산주의만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부강과 극빈으로 나누어졌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우월성과 이기심을 부추기는 사상이라면 공산주의는 공동체의 나눔을 우선하는 사상이다. 남한의 경우 잘 살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비하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경쟁에서 온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경쟁의식을 부추겨 강자가 생산과 소유를 독점하도록 한 것이다.
사람은 이타적인 것보다는 이기적인 면이 강하다. 당연히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승리하게 되어있다. 자본주의의 완승이다. 안타까운 점은 자본주의만을 받아들여 경쟁사회에 살다보니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경계와 질시가 있다. 공동으로 나누어가져야 할 것을 혼자 많이 가졌다 또는 내 것을 빼앗아갔다는 생각을 하는 약자들이 있다. 빼앗겼다는 생각을 가진 사회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유다.
경쟁에서 승자는 항상 소수다. 당연히 부자는 소수고, 1등은 하나며, 좋은 회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이 드물게 된다. 이제는 등수가 중요하지 않고, 문화로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재능과 다른 삶의 방법이 빛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처럼 경쟁으로 다수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아픈 사회다.
한국인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한데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모두가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들다고 한다. 정신을 버리고 물질의 비교에서 오는 공허함이다. 물론 어려운 경제에 이유를 댈 수 있다. 하지만 지구촌은 아직도 굶주리고 있다. 1/3이 하루 한 끼를 먹고, 1/3이 하루 두 끼를 먹는다. 하루에 세끼를 먹는 사람은 인류의 1/3에 불과하다. 우리는 오히려 비만을 걱정하면서 가난하다고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비웃는다.
세상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데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인에 대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국인은 자신들이 부자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 둘째는 한국인은 위대한 민족인데 자신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 셋째는 한국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나라인데 너무나 태평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이를 긍정적으로 풀면 전쟁이 잠시 휴전인 기간에 위대한 성장과 위대한 민주화를 이루었음에도 이를 만든 한국인은 정작 자신의 위대함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은 이제 다시 긍정의 힘을 믿고, 출발해야 한다. 종교의 시장이자 사상의 시장인 한국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사상적 종교적 힘을 가지고 있다. 역량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면 발전가능성이 어느 나라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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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광철 작가, <극단의 한국인 극단의 창조성>의 저자. 시인-작가며 한국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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