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의로운 사람들과 사귀어 왔네. 죽겠노라 맹세가 하늘과 해를 뚫나니 오만 가지 형벌인들 몸을 사리랴. -선생이 옥중에서 남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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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채기중 선생은 7월에 태어나시고 7월에 순국하신 독립운동가 입니다. 그래서 국가보훈처에서는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생을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경상북도 함창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했는데 그런 성격으로 인해 불의와 억울한 일을 보면 못 본 척 넘어가질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비록 근대식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서당에서 한학을 통해 얻은 높은 수준의 한문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생이 지은 한시가 무려 76편이나 될 만큼 조예가 깊었습니다.
경상도 영주의 옛 이름은 ‘풍기’입니다. 선생은 경상도 풍기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당시 이곳은 이주민들의 전입이 많아 독립운동가들이 신분을 숨기고 은밀히 활동이 가능한 지역 중 하나 였습니다.
채기중 선생은 이곳에서 1913년 ‘풍기광복단’을 조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합니다. 당시 선생의 뜻에 동참하여 독립운동가 유차순, 유장렬, 한훈, 강순필, 정진화 등의 애국지사들이 뜻을 함께 하게 됩니다. 선생이 풍기광복단을 조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의열단의 전설적 인물 중 하나인, 조선의 쌍권총 김상옥 의사를 만나게 되고 같이 독립운동에 뛰어듭니다.
풍기광복단 조직원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극히 ‘평범한’ 자들이었고, 다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의협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순수 청년들이었습니다.
우선적으로 이들이 추진한 거사는 독립군의 군자금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영월의 중석광에 잠입하거나 일본인 부호들을 공격하여 군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915년 7월 15일. 채기중 선생은 독립운동가 박상진 선생과 함께 대한광복회를 창설합니다. 대한광복회는 풍기광복단의 연장선에있는 확장단체입니다. 박상진 선생은 당시 판사시험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관리가 되지 않겠다며 법복을 벗고 항일운동에 투신한 분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대구 달성공원에서 일련의 통합작업을 거쳐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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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한광복회의 4대 강령은 『비밀, 폭동, 암살, 명령』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의 신흥무관학교를 포함 독립운동기지를 지원하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것이 주요 목표여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해외기지를 지원하는 활동단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한광복회가 군자금만 모집한 것은 아닙니다. 대한광복회에 들어온 대부분의 사람은 의병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많아서 친일부호 처단, 무기구입, 독립군양성 등 다양한 내용의 활동목표를 삼았습니다.
이러한 대한광복회의 활동 중 군자금 모집과 관련된 활동을 담당했던 인물이 바로 채기중 선생인 것입니다. 실제로 선생은 대 부호들에게 나라를 위해 의롭게 쓰이는 의연금을 지원하라는 문서를 배부하였는데 당시 식민지 권력에 안주하려는 부호들은 군자금을 내는 것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런 불의한 모습들에 선생은 친일부호를 처단하며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친일부호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드러나 결국 일경에 체포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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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선고 결정문 |
선생이 직접 가담하여 처단한 친일부호는 장승원이며 당시 친일파 처단에 함께 가담한 인물들은 모두 풍기광복단 출신입니다. 장승원 처단사건은 친일부호 처단 활동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며 친일파들에게 큰 경각심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일본경찰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친일파 박용하를 추가로 처단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발각되어 핵심 인물들이 체포되어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사형을 선고받아 순국하게 되며 이후 조직이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이 와중에 선생 또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순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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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잊혀진 영웅들-독립운동가』 저서와 스마트폰 어플 ‘독립운동가’에서 일부 발췌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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