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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식민사학과 가야사 복원의 의미가야사 복원이 곧 낙동강 전선이다!

필자가 소속돼있는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2015년 9월 16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식민사학 극복 학술대회’를 개최한바 있다. 학술발표에는 신용하 교수, 박성수 교수 등이 나섰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제 식민주의사관의 동기와 형성과정이라는 주제논문에서 "일제는 식민주의사관에 따라 한국 병탄이 ’일본의 구(舊)강토 회복이요, 복구‘라고 터무니없는 강변을 했다"라며 "일제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더욱 강조하여 한국민족의 저항과 독립운동을 무마하려고 획책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우리역사의 바른 모습을 알아야한다면서, "한국민족은 이미 약 5천 년 전에 동아시아 최초로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를 건국하고 고조선문명을 형성하여 자주독립국가를 수천년간 연이어 영위하면서 주변국가에 문명을 전파시킨 민족임이 증명되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역사의식은 한국민족사가 주변국가의 콜로니(식민지)로 시작되었다는 일제 식민주의 사관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이병도와 일제식민사학’을 주제로 대표적인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발표했다. 박교수는 "단군말살의 명령계통은 구로이타 가츠미(黑板勝美), 이마니시 류(今西龍), 이병도였다. 이병도는 이마니시 류의 '단군고'를 충실히 읽고 배워서 자신의 시조 단군을 칼 아닌 붓으로 지웠다. 이러한 인맥을 살펴보지 않으면 일제 식민사학이 무엇이고 이병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이어 "이병도 사학의 잘못은 일연의 '삼국유사'(1285)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삼국유사'를 잘못 읽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학술발표가 끝난 직후에 한겨레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성수교수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튿날 한겨레신문에 박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크게 실렸다. 기사 제목은 “아직도 역사학계에 ‘친일사학자 이병도’가 너무 많다”였다. 다분히 자극적이었다.
  인터뷰에서 “위서(魏書)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조선을 개국하였으니 중국의 고(高=堯)와 같은 때였다’고 돼있다. 일연도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건국은 서기 전 2333년의 일로, 중국으로 말하면 요와 같은 때요, 환인과 환웅은 오제 이전인 삼황 때’ 였음을 말하고 있다. 고조선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문건인 <신지비사>에 대해선 <삼국유사>와 <고려사>에 나온다. 그러나 이병도의 <국사대관>과 <한국사>, <한국고대사연구> 어디에도 <신지비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이병도의 역사말살을 지적했다. 이어 “나도 이병도 선생의 <국사대관>을 보고 공부했다. 그런 선생님을 비판하자니, 나도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발표문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다 보니 짜투리가 되어버렸다.”고 적고 있다. 그 당시 원고 편집을 맡았던 필자에게 박교수는 “이병도 문제를 다루려다보니 원고마감이 늦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 그 때의 박교수 논문을 보니 결론을 이렇게 마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석구석에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사관이 숨어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국학도감>이란 이름은 좋으나 진짜 국학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토막 난 역사와 전통만 수록하고 그것을 우리문화의 전부로 알고 있었던 것인데, 21세기의 미래는 그보다 더 무서운 재식민지화(再植民地化)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신문화(겨레얼)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이다. 하루속히 식민사학 청산을 통해 통일이 되어 신(新)조선시대가 와야 할 것이다”

 

  박성수 교수는 인터뷰 마지막에서, “지금도 ‘이병도 선생’이 한두 사람이 아니어서 우리가 일제 식민사관을 우리 역사로 알고 속아왔다”면서 “고조선의 국학을 되살려내야 광복이 이루어지는데 지금 우리는 외래문화의 노예가 되어 재식민화(再植民化)의 길목에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박교수가 논문과 인터뷰에서 두 번이나 간곡히 강조한 말이 재식민지화(再植民地化)였다. 박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금 우리에게 이 재식민지화(再植民地化)에 대한 대응전략의 수립은 유언으로 남아있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6월2일 세계환단학회 세미나장에서 필자는 “이제야 민족사학계가 낙동강전선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이제까지 일방적인 공격만 당하고 방어선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6.25때에 낙동강까지는 우리 국군이 속수무책으로 총 한방 쏘지 못하고 후퇴만하다가  낙동강에서 비로소 유엔과 함께 방어선을 구축한 적이 있다. 그렇게 공격선에 대해 방어선이 형성되었을 때를 전선(戰線)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권력을 등에 업은 식민사학에 일방적으로 밀려만 오던 재야민족사학이 <환단고기> 완역본 발간을 계기로 결성된 ‘세계환단학회’의 창립(2014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다시 말해 식민사학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던 재야민족사학계가 전면적인 방어선을 형성해 조직적으로 싸울 수 있는 역량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론적으로도 체계적인 방어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필자가 민족사학계의 낙동강 전선을 말할 즈음, 문재인대통령은 가야사 복원을 언급하였다. 필자는 처음에 ‘가야사’라고 하길래, 어느 가야사(伽倻寺) 사찰을 복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문대통령의 말처럼 정말 ‘뜬금없는 가야사(伽倻史) 복원’이라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사찰 사(寺)가 아니라, 역사 사(史)였다. 반가운 일이다. 가야사가 제대로 복원되면 소위 일제가 조작해놓은 ‘임나일본부설’은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일찍이 가야사의 복원으로 3국이 아닌 4국사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던 윤내현 교수는 “가야 지역은 가야가 건국되기 훨씬 전 고조선 말기인 서기 전 1세기경에 이미 발달된 국가단계의 사회에 진입해 있었고, 이러한 수준 높은 사회는 고조선이 붕괴된 뒤 한(韓)시대로 이어졌으며 이를 이어 가야가 건국되었다”(<한국열국사연구> 259쪽)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뉴라이트 이명희 <고등학교 한국사>에는 “가야는 삼국 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였으나 연맹 왕국 단계에서 고대 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가야를 삼국과 함께 같은 시대에 있었던 국가라고 해서 이 시대를 삼국 시대가 아닌 사국 시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가야는 백제와 신라의 틈바구니 속에서 결국 신라 진흥왕 때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교학사 출판, 28쪽)며 애써 가야사를 축소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필자는 문득 ‘가야사 복원이 곧 낙동강전선’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순간 머리가 찡하였다. 그렇다. 우리 재야민족사학계는 가야사복원 사업으로 역량을 모아 낙동강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가야사의 범주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1980~90년대 가야권 유적과 유물의 활발한 발굴을 통해 낙동강 서부의 토기는 가야 것, 동부는 신라 것이라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왜곡된 지역 구분을 바로잡아가고 있다. 남재우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 낙동강 유역이 개발되면서 가야고분 등에서 고구려, 신라, 백제 못지않은 유물이 발굴됐다”며 “가야 역사가 경남, 경북, 전남, 전북에 걸쳐 분포하고, 일본·중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사료가 부족해 연구가 미흡했다. 국정역사교과서에도 고구려, 신라, 백제 중심으로 역사가 서술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고대사 연구의 폭을 넓히는 차원과 역사 균형연구 차원에서도 가야사 연구와 복원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걱정도 있다. 식민사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비교수들이 이 가야사 복원사업에 투입된다면, 그것은 가야사 복원이 아니라, 임나일본부 재건이 될지도 모른다. 제2의 세끼노가 나와 일제에 가야를 봉헌하는 꼴이 될 것이 뻔하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긋지긋하던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회오리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권력자가 역사 연구 방침을 시달하는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불의한 권력에 한평생 앞 다투어 아부와 변신의 귀재였던 부류들이 갑자기 권력자를 질책이라도 하듯이 고고한 선비처럼 언동을 하고 있다. 위선자들이다. 불의한 권력이 다스리던 때에는 바른 소리 한번 못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가장 역사를 사랑하는 정의파처럼 말하고 있다. 김정배의 국정역사교과서가 폐기되지 않고 과거 정권에서 발간되었더라면 집단 탄성을 올렸을 저들이 아닌가! 국민은 역겹다. 그다지도 평소에 가야사를 사랑하고 있었으면, 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가야사 한권 내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가히 이율배반적이다. 학자들이 제때에 제 역할을 못하니까 마지못해 정치권이 나선 것이 아닌가?


  한편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는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용해야 할 위치에 있는 대통령이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갖지 못하는 종합적, 거시적 안목에서 특정연구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은 절대 부적절하지 않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과제를 수행할지 오직 고대사 연구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의 오만”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오만은 어디에서 오는가? 신문용 박사도 “우리는 전문학자가 아니어도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역사연구를 할 수 있는 역사의 대중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전히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 일제와 박정희 정권의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퇴행적 역사태도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 오만의 극치를 이룬 자들이 과연 누구일까? 문화재를 사랑하면 문화재가 저절로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민족을 사랑하면 이전과 다른 자기 민족의 특성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다른 민족의 특성에만 매몰되고 자기 민족을 비하하는 오만이 싹튼다. 식민사학자들이 전형적인 예이다. 말마다 그들은 식민사학을 스스로 청산했다고 항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곱지 않다. 아직도 식민사학의 충실한 노예와 다름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불만의 요인은 민족의 혼을 피폐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겨레얼을 죽음의 지경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사학(死學)같다. 이름하여 식민사학(食民死學)이다. 그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여우같은 자들이다. 여우는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한다. 이들이 머리를 둘는 언덕은 과연 어디일까? 금서룡? 백조고길? 도엽암길? 진전좌우길? 아니면 평양한사군? 패수대동강? 임나일본부? 아니면 경기도 용인에서 박사마을로 유명한 노루실(老谷)이 아닌지 모르겠다.


  따라서 가야사 복원은 이런 노루실 사람들이나 서울의 정치교수들이 아닌, 진실로 지방에 애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 향토사학자가 나서야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민족사학계가 함께 한다면 온전한 한민족사 복원의 길이 이 낙동강에서 반드시 열릴 것이다. 낙동강 전선에서 기선을 잡은 후에 민족사학계는 제2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노루실 사람들의 옆구리를 일시에 강타하여 굴복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한(韓)문화타임즈>가 창간되는 2017년이 왜곡된 식민사학을 청산하고  역사광복을 이루는 원년으로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찬구 (겨레얼운동가, 철학박사)

 

김만섭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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