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장군은 8.15 해방을 9개월 앞둔 1944년 12월 1일 공주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해 공주시 어딘가에 묻혔으며, 지금은 1982년 당시 공주군수가 세운 '애국지사 오동진 선생 추모비'가 공산성 입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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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 남은 이름, 오동진
공산성 입구, 조용히 서 있는 추모비
그 위에 새겨진 이름, 오동진
조국의 빛이 보이지 않던 날,
스스로 등불이 되어 어둠을 비추던 이여.
평안북도의 들판에서 시작된 걸음은
만주의 험준한 산맥을 넘어
광복군의 깃발 아래 모인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나눴으리라.
143번의 작전 속에 깃든 숨결,
14,000 독립군의 땀과 함께
모든 것은 조국의 독립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감옥 속에서도
그 뜻은 꺾이지 않았건만
1944년, 공주의 하늘 아래
그 몸은 멈추었다.
오늘도 공산성의 입구에 서면,
누군가는 그 이름을 지나치고,
누군가는 발길을 멈춘다.
하지만 아직, 너무도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 추모비는 말하리라.
“나는 여기 있다.
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름이 있다.”
이제 우리도 그의 이야기를 품어야 한다.
공주의 바람 속에, 공산성의 돌담 위에
그의 이름이 더 높이 울려 퍼지도록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말해야 한다.
오동진이여,
당신의 뜻이 이제는 우리의 빛으로
잊혀지지 않는 별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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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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