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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눌의 『깜박 잊은 우리말, 우리역사』 청보(淸譜)와 탁보(濁譜)

老子의 姓氏

앞선 글에서 老子의 성씨에 대해 원로 한 분의 질의를 받았다. 요지는 “제가 가진 자료로는 노자가 BC 571년 오얏나무 근처에서 태어나 스스로 성을 李로 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전설인가요?“

이는 번한세가(番韓世家)에,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에 대해서 묻는 중에, 노자 아버지의 성은 韓이고 이름은 乾이며, 조상은 풍인(風人)이라 하였다“는 기록에 대한 반문이다.

노자의 성씨에 대해 李라 단정적 표현을 쓴 것은 한 대(漢代) 때부터이다. 사마천은 <사기> '신한노장열전'에 李耳라 쓴 것은 漢나라 이후이니,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 기록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음이다.

도교의 ‘태상노군(太上老君)’에는 '이씨 성은 전설이다'라고 나온다. 태상노군은 노자를 도교에서 신격화하여 신선으로 숭배했다. 달리 도덕천존(道德天尊)이라고도 부른다.

번한은 치두남(蚩頭男)부터 시작된다. 漢나라는 BC 202년, 공자가 노자를 만난 시점으로부터도 349년의 시차가 생긴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老子를 가문으로 끌어들여 당실(唐室)의 조상으로 삼았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의 가문은 농서이씨로 선비족이며, 한족으로 동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권자나 빈천자가 권력 반열에 오르면 자신과 가문의 부족한 정통성 확보를 위해 유명 인물로 상계를 조작했다. 이를 청보(淸譜)와 탁보(濁譜)로 분류한다.

번한세가 기록이 의심스럽다면, 우리 고사서는 폐기되어야 할까?

 

한문수/ 역사칼럼니스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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