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나일본부의 실체 1 "
지난 2017년 9월 28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가야문화 복원을 통한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36회 국학원 정기학술회의에서 ‘임나일본부는 없었다’의 저자인 황순종 박사의 발표 내용을 7차례에 걸쳐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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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순종 박사 |
임나일본부설의 골자는 진구 49년(369) 신라를 공격하여 가라 7국을 평정하고 그 자리에 임나를 세웠다는 것이고, 그 임나를 2백 년 동안 지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지배조직으로서의 일본부라는 명칭이 기록된 것은 후반 약 백 년 뿐으로 464~552년 사이이다.
여기에서 벌써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일본인들이 후대에 조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69년에 임나를 세웠으면 그 통치기구인 일본부도 그때 생겼어야 하는데 일본부는 100여년 후에야 등장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이라는 용어 자체가 7세기 후반에 처음 생기기 때문에 464~552년에 등장하는 일본부라는 명칭 자체가 7세기 후반 이후에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464년에 처음 임나‘일본부’가 기록된 이후 두 번째로 임나‘일본부’가 보이는 것은 그로부터 77년 후인 541년이다. 그 후 552년까지 불과 11년 동안에 일본부에 관한 기록이 10여 회 집중된다.
『일본서기』 기록 자체가 이런 식으로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후반까지 2백 년 동안 임나를 지배했다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이론인지를 익히 알게 된다. 그러므로 최근에 와서는 일본 학자들에게서 임나를 지배한 것이 30년이라는 둥 10년이라는 둥 그리고 심지어 1년이라는 둥의 처량한 학설들이 나오는 것이다.
일본부에 속한 관인의 관직명을 통해 임나의 실체를 살펴보자. 『일본서기』에는 집사, 신(臣), 경(卿), 행군원수 등의 다양한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데, 고 최재석 교수는 「가야사 연구에서의 가야와 임나의 혼동」이라는 논문에서 이러한 관직명은 8세기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서 후세에 삽입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여러 명칭들에 관해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는 동일한 최고책임자의 관직 이름이 아니라 각자 높낮이가 있는 상하의 관직이라고 주장했다. 즉 임나는 관료조직을 갖춘 나라였다는 설명이다. 이노우에는 일본부의 경(卿)은 기본 문제를 결정하는 상급자이며 그 밑에 있는 집사는 경이 결정한 정책을 따라 구체적인 외교행정을 행하는 하급자라고 주장했다.
이노우에의 말이 맞다면 이런 여러 명칭들이 동시에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없고 각각 따로 나타난다. 경이 집사의 상관이라는 증거는 『일본서기』에도 없는 그의 독단에 불과하다. 긴메이 4년과 5년 조에 보면 백제에서 임나집사와 일본부집사를 불렀는데, 일본부 대표를 꾸짖기도 하는 사례가 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부집사는 이노우에의 주장처럼 하급 관인이 아니라 최고 책임자임이 확실하다.
더 의문스러운 것은 ‘임나’의 지배조직이나 행정조직이 다섯 개나 된다는 점이다. ‘일본부’라는 이름 외에도 임나에 관한 정치, 행정조직이 네 가지나 더 보인다. ‘일본부’ 외에 지방행정 단위인 ‘국(國)’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또는 직할령인 ‘관가(官家)’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임나 안의 ‘현읍(縣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수시로 일본에서 파견된 ‘사인(使人)’이 임나를 지배했다고도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재석은 야마토 왜가 이런 이질적인 5종의 정치제도로 임나를 지배했다는 것은 조작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임나를 다스리는 수장에 대한 이름도 여럿 등장한다. ‘국’의 수장으로 기록한 것으로는 임나국사(國司), 다리국수(國守), 하다리국수, 임나대부(大夫)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일본서기』 자체는 임나를 나라로 보아서 ‘임나왕’으로 표현하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국사, 국수 등이 임나의 수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사(國司) 또한 조작한 명칭이며, 국사·국수·대부 등은 모두 8세기 이후 출현하는 관직이므로 5세기의 기록에 보이는 것 역시 조작이다. 특히 대부는 지방관직이 아니라 중앙에만 있는 중앙관직이다. 『일본서기』에서 국수라는 표현이 있는 기사 두 가지만 보기로 하겠다.
①게이타이 6년(512) 12월, 다리국수(哆唎國守)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穗積押山)가 “임나의 4현은 백제와는 닭과 개의 주인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가까우니 백제에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②게이타이 23년(529) 3월, 백제왕이 하다리국수(下哆唎國守)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에게 가라(加羅)의 다사진(多沙津)을 달라고 주청했다.
①번 사료는 다리국수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가 임나 4현을 백제에 주자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임나 4현과 백제는 닭과 개의 주인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가깝다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백제는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백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한 다리국수가 임나 4현을 백제에 주자고 주청했다는 것은 다리국수가 임나의 할양문제까지도 관장하는 최고 직위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도 ‘임나왕’이니 ‘일본부’니 하는 것이 모두 조작이거나 아주 작은 마을 단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②번 사료도 백제왕이 하다리국수에게 가라의 다사진을 달라고 요청했다는 영토할양 기사이다. 이 역시 임나왕이 아니라 국수가 임나 문제를 관장하는 최고관직으로 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수라는 것은 8세기 이후에나 생긴 관직명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후대에 조작된 명칭이다.
다음으로 ‘관가(官家)’로 기록된 경우를 보자. 『일본서기』에서 관가는 보통 식민지나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서기』는 진구 왕후가 섭정하던 주아이 9년(320)에 진구가 신라를 정벌하자 고구려, 백제 임금이 모두 와서 항복하면서 “조공을 끊이지 않고 바치겠다.”고 맹세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구 왕후는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백제까지 내관가(內官家)의 둔창(屯倉:창고)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삼한(三韓)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기 320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야마토에 항복하고 야마토의 관가(官家)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일본에서도 사실로 인정하는 학자가 없을 정도로 허황된 이야기다.
『일본서기』에는 일본 열도에도 관가가 있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를 뜻하는 해서(海西) 제국에도 관가가 존재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온 세상이 야마토의 관가라는 사상의 발현인데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이 조작된 기사들이다.
임나에 있었다는 관가에 한정시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본서기』에는 긴메이(欽明)조에 관가 이야기가 거듭 등장한다. 그 중 긴메이(欽明) 23년(562) 정월 조를 보자.
“신라가 임나(任那) 관가를 타멸(打滅)시켰다[다른 본에는 21년(561)에 임나를 멸망시켰다고 한다. 총체적으로 임나를 말하는 것이고 따로 말하면 가라국(加羅國)・안라국(安羅國)・사이기국(斯二岐國)・다라국(多羅國)・졸마국(卒麻國)・고차국(古嗟國)・자타국(子他國)・산반하국(散半下國)・걸찬국(乞飡國)・염례국(稔禮國)으로 합해서 10국이다].”
이 기사는 많은 혼란을 야기시켰다. 긴메이 23년(562)에 신라가 임나를 멸망시켰다는 것인데, 이 해는 신라 진흥대왕이 재위 23년(562) 가야를 멸망시킨 해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야=임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가야가 임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국사기』 진흥대왕 23년(562) 조의 가야멸망 기사는 『일본서기』와 다르다.
“9월, 가야(加耶)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이 이사부(異斯夫)에게 토벌을 명했는데, 사다함(斯多含)을 부장(副將)으로 삼았다. 사다함은 기병 5천을 이끌고 먼저 달려가 전단문(栴檀門)에 들어가서 흰 깃발을 세우자 성안 사람들이 놀랍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했다.”
이때는 법흥왕 19년(532)에 금관가야가 신라에 항복한 지 30년 후이다. 이때 반란을 일으켰다는 가야는 가야 잔존 세력이 가야 재건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이므로『일본서기』에서 562년에 멸망시켰다고 말하는 임나 10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역사사료를 조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서기』도 마찬가지여서 한 가지 항목을 가지고 몇 군데 비교해보면 곧 모순이 드러난다. 이때 신라가 멸망시켰다는 임나도 마찬가지다. 562년으로부터 61년 후인 623년(스이코 31)에도 또 “신라가 일본 관가를 빼앗았다.”는 기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내용을 조작·변개했지만 좌우와 가로세로를 치밀하게 살펴서 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조금만 분석하면 모순이 금방 드러난다. 또한 임나 관가에 대해서도 ‘있다·없다·뺏다’ 등의 존재나 멸망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구체적인 구조나 경영방식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이런 측면에서도 관가에 대한 기사는 조작이며 이를 통해 임나를 지배했다는 주장도 허구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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