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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 조에 나오는, 허황옥이 가야로 올 때 배에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의 모습 |
오늘은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이자,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온 허황후(許黃后)가 선화(仙化)한 지 1,836주기가 되는 날이다. 허황후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189년 음력 3월 1일에 1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허황후는 역사 속 잊혀진 한 왕후로서 인물을 넘어, 한반도와 인도를 연결하는 역사적 존재로 재조명되고 있다.
허황후의 존재 의미
허황후는 한반도 역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첫째, 고대 한반도와 인도 간의 교류를 상징한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허황후는 바다를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하며 가야의 왕비가 되었다. 이는 한반도와 인도 간의 문화·경제 교류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현대 유전자 연구에서도 일부 김해 김씨 후손들에게 인도 남부 지역과 유사한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허황후 전설이 단순한 신화가 아닐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둘째, 다문화 공존의 대표적 사례다. 허황후는 외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가야에서 왕비로 받아들여졌고, 10명의 왕자를 두어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이는 고대 한국 사회가 외부 문물을 수용하는 개방적 태도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셋째, 문화와 기술 전파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허황후는 붉은 염료로 사용되는 '소목(蘇木)'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후에 한국 전통 염색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불교 전파와의 연관성도 학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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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허황후 우표 발행 |
허황후의 실존 역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
허황후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우표가 발행되었으며, 영화와 오페라 공연 등 예술 작품으로도 제작이 되어 소개된 바 있다. 이러한 문화적 재조명은 허황후의 역사적 의미를 현대에 되살리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의 결과이며 사라진 500년 가야사를 밝힘으로써 일본에 의한 역사 왜곡과 식민사학에 찌든 이들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잡아주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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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허황옥 3일 |
선화 1,836주기를 맞이하는 오늘의 의미
오늘날 허황후의 존재는 단순히 역사 속 한 인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인도 간의 우호 관계를 이어가는 중요한 문화적 연결고리로 자리 잡고 있다.
김해에는 허황후를 기리는 허황후릉이 있으며, 매년 그녀를 기리는 제례가 열리고 있다. 또한, 인도의 아요디야(아유타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는 허황후를 기리는 조형물이 세워지고, 한·인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1년에는 인도 모디 총리가 "허황후는 양국 관계를 잇는 중요한 인물"이라며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허황후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개방성의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녀가 가야에서 환영받고 정착했듯이, 현대 사회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는 한국과 인도의 역사적 인연을 기반으로 더욱 깊은 교류와 협력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허황후 선화 1,836주기를 맞아, 우리는 그녀의 발자취를 통해 한반도의 개방성과 교류의 역사를 되새기고,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다문화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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