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벌판에 우뚝 솟은 발해의 옛 도읍, 상경용천부. 나는 이곳 박물관을 찾으며 발해의 찬란했던 문화와 정치의 흔적을 기대했다. 그러나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발해에 대한 전시 내용이 매우 편향된 시각에 의해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
전시물과 안내문은 발해의 독자적인 정체성보다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지방 정권’이라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발해가 당의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강조되고, 『신당서(新唐書)』와 『구당서(舊唐書)』 등 중국 중심의 사서들이 반복적으로 인용된다. 정치 제도, 관리 임명 체계, 국호 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마치 당나라의 지도와 간섭 속에서 이루어진 듯 묘사된다.
심지어 발해의 건국조차 당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이러한 전시는 발해를 하나의 독립된 문명국가로 보기보다는, ‘당의 문명화 작업’에 따라 형성된 변방 정권으로 축소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물론 이곳은 중국 영토이고, 중국의 역사관에 기초한 전시 구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발해의 역사적 실체를 왜곡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우리는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발해(대진국)는 고구려의 후예로서,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정치 질서와 문화권을 이룬 강대국이었다.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만큼 국제적 위상도 뚜렷했고, 일본・신라・거란과의 외교 관계도 능동적으로 전개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 나라의 역사가 타국의 시각에 의해 규정되고 왜곡된다면, 우리는 그 거울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 안의 진실을 되찾아야 한다.
상경용천부 박물관은 발해의 영광을 되새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발해사 왜곡의 현장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고구려와 발해를 단절된 국가가 아닌, 하나의 국통(國統)으로 인식해야 한다. 발해(대진국)는 단지 당나라의 그늘에 있던 정권이 아니라, 고구려를 계승하여 새로운 역사를 일군 자주적 문명국가였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사에 대한 예의이다.
아래는 상경용천부 박물관의 설명문이다

"당나라 조정이 발해를 세우다"라고 해석될 수 있는 타이틀. 당조정이 발해국을 책봉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나라의 관할 아래 발해의 발전'이라고 큰 제목이 써 있다.

빨간 부분은 '지방정권'이라고 되어있다. 발해가 당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