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예술고등학교에서 여고생 세 명이 함께 생을 마감했다. 학업과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토로하는 자필 유서를 남기고,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세상을 떠났다. 학교폭력도, 특정한 가해자도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질문 하나다.
도대체, 왜?
세 학생은 친구였다. 같은 학교, 같은 고민을 안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 아이들. CCTV에는 옥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발걸음이 담겼고, 현장에는 짧은 유서와 가방, 휴대폰이 남겨졌다. 유서에는 “미안하다”, “슬퍼하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가족에게 남긴 영상 속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세상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한순간의 충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구조적인 문제, 무너진 교육의 민낯이었다. 이 비극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경고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청소년 우울증”, “학업 스트레스”, “입시 지옥”이라는 단어를 반복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너무나 무관심했다. 학생들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해야 하는 존재처럼 여겨졌고,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정작 ‘살아 있는 것 자체’의 의미를 잃어갔다.
학교는 아이들의 쉼터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가능성과 개성이 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학교는 점수와 등수, 비교와 평가만이 존재하는 경쟁장이다. 예술고등학교조차 창의성과 감성을 기르기보다 입시 실적과 성과를 앞세운 채,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 강사 대다수가 한꺼번에 교체되며 수업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그들의 혼란과 상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제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된다. 대학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사고, 고등학교 시절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착각,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교육 문화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다양한 진로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정서적 돌봄과 상담, 인간적인 소통이 있는 학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학교의 운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사학 경영권 다툼으로 오랜 기간 불안정했던 학교 운영 체제, 강사 대거 교체로 인한 교육 환경의 붕괴 등은 단지 행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하루하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삶의 문제다.
세 명의 학생이 택한 마지막 선택은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이 아이들의 죽음을 단지 ‘개인적인 비극’으로 처리하고 끝낸다면, 같은 일은 또 반복될 것이다. 학교는 성적을 잘 받는 인간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살아갈 힘을 지닌 사람을 길러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옥상으로 걸어올라간 그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왜 그 아이들은 그 길밖에 없다고 느꼈을까?” 그리고 반드시 답해야 한다. 다시는 그런 길로 아이들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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