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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75년 전 그날, 대전에서 되살아난 평화의 외침
고 조광진 영도유격대 참전용사를 대신해서 아들이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2025년 6월 25일, 대전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거행된 기념식은 단순한 추모의 자리를 넘어, 기억과 책임, 그리고 평화의 미래를 새롭게 묻는 성찰의 공간이었다. ‘영웅들이 지킨 나라, 이어나갈 대한민국’이라는 주제 아래, 참전용사들과 유족, 정부 주요 인사, 22개 유엔참전국 외교사절, 미래세대 대표 청소년들까지 1,3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이날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화려한 무대나 웅장한 음악이 아니었다. 2025년을 살아가는 한 청년 장교가 낭독한 짧은 편지 한 장이었다.

“당신의 희생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육군 소위이자 참전 유공자 후손인 김찬솔 장교의 편지는, 시간여행 콘셉트로 구성된 기념공연의 정점이었다. 1952년의 전쟁터를 방문한 2025년 청년이 과거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뮤지컬 퍼포먼스는, 전쟁을 단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지탱하는 현실의 일부로 되살렸다. 기억은 곧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한 이 장면은, 오늘 이 자리가 단순히 눈물 흘리는 추모가 아니라 행동을 요구하는 외침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는 이주호 국무총리 직무대행의 모습

행사의 중반, 정부는 두 명의 비정규군 참전용사에게 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정규군 기록에도 남지 못했던 이름, 조광진과 최광국. 영도유격대와 미군 특수부대 8240 소대장으로 활약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 기억 속에 사라졌던 이들의 이름이, 75년 만에 공식 역사 속으로 돌아왔다. 이 정부포상은 단순한 훈장이 아니라, 국가가 과거의 누락을 바로잡는 ‘기억의 정의’ 행위였다. 살아남은 유족들이 조심스레 받아든 훈장 하나가,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평화가 결코 값싼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어진 기념공연Ⅱ에서는 대전아트콰이어와 국방부 성악대대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푸른 소나무’와 ‘아름다운 강산’은 단지 노래가 아니었다. 참전용사의 육성 인터뷰와 함께 울려 퍼진 이 곡들은, 전장의 기억과 현재의 평화를 아름답게 이어주는 선율이었다. 22개 유엔참전국의 부대기가 입장하고, 전 참석자가 함께 부른 ‘6·25의 노래’는 영웅들의 정신을 노래로 계승하려는 공동체적 약속이기도 했다.

기념식에서 가장 주목받은 연설은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의 기념사였다. 그는 단호하고도 따뜻한 언어로 말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목숨을 바쳐 투혼을 발휘했던 6·25참전영웅들의 위대한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해, 보훈이 일상이 되는 나라, 국가유공자를 존경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겠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정부의 의무를 일상의 문화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대전현충원에 모셔진 홍범도 장군의 묘

정치권의 메시지도 이어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행사 후 대전국립현충원을 찾아 홍범도 장군과 채수근 상병 묘역을 참배하며 “더 단단한 민주주의와 튼튼한 안보로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남겼다. SNS에는 “총성은 멈췄지만 분단의 고통은 여전하다. 대화 없는 평화는 환상이다. 이제는 말이 아닌, 현실적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라고 적었다. 그 말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안보 현실을 절실하게 드러냈다. 한편,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하고 있는 이주호 국무총리 직무대행 역시 “영웅들이 지킨 자유를 우리가 이어받아, 평화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연대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숭고한 외침과는 다르게 이날의 기념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많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전쟁에 무관심해졌는가. 75년이라는 시간은 평화를 지루하게 만들고, 전쟁을 낡은 이야기로 만들어버렸을까. 문제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인 ‘기억의 단절’이다. 학교에서 전쟁은 시험문제로 다뤄지고, 미디어에서는 그저 반복되는 행사의 일부로 소비된다. 평화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그 일상을 만든 피와 땀과 눈물을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그 평화의 바탕을 지워가고 있다.

더욱이 지금의 세계는 한순간도 안전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충돌, 이란의 개입,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를 대만해협의 긴장까지. 전쟁은 지금도 현재형이며,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상태다. 우리가 평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바로 그 당연함이 가장 큰 위협이 된다.

대전에서의 기념식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참전용사의 인터뷰, 비정규군의 훈장, 청년의 편지, 장관의 기념사, 정치인의 다짐. 이 모든 것은 오늘 우리가 안보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기억을 어떻게 살아 있게 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오늘, 대전에서 울려 퍼진 노래와 말과 훈장 하나하나가 그냥 흘러가서는 안 된다. 기억은 기록이 아닌 행동이 될 때 비로소 역사로 남는다. 그리고 그 행동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속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 된다.

6.25전쟁 75주년 기념식이 진행된 대전컨벤션센터 행사장 모습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평화는 오늘, 우리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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