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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학의 거목, 윤내현 교수 별세 |
2025년 6월 29일 오후, 대한민국 민족사학의 대들보이자 고대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연 윤내현(尹乃鉉) 단국대학교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86세.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오는 7월 2일 수요일 오전 7시 30분, 화장은 서울추모공원에서 오전 9시 10분에 엄수될 예정이다.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 고대사의 본래 자리를 찾고자 한 평생
1939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윤 교수는 단국대학교에서 학·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 역사언어학과에서도 수학하며 학문의 폭을 넓혔다.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박물관장, 부총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고, 문화재위원, 국사교육심의위원, 단군학회 회장, 고조선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학계와 사회를 잇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특히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와 강단사학의 기득권적 통설에 맞서, 한국 고대사의 뿌리를 토착성과 자생성에서 찾고자 일생을 바쳤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을 넘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실천적 지식운동이었다.
● 대표 저작과 연구 성과
윤 교수의 학문적 시선은 고조선과 상고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1978년 《상왕조사 연구》를 시작으로, 《상주사》, 《한국 고대사신론》(1986), 《고조선 연구》(1994·1995), 《한국 열국사 연구》(1998) 등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고대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다수의 연구서를 집필했다.
최근에는 《한국 고대사》(2021), 《우리 고대사–상상에서 현실로》(2003, 2016),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2007) 등을 통해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했다.
특히 그의 저작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제된 자료 분석과 논리적 전개로 고대사 복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학문적 집대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 고조선의 복원, ‘위만조선은 요서에 존재했다’는 전환적 해석
윤 교수는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실체를 놓고 기존 통설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문헌과 고고학을 교차 검토하며 ‘위만조선은 요서에 위치했고 고조선과 병존했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는 단순한 상상이나 민족주의적 환상이 아니라, 실증 자료에 기반한 역사 재해석으로, 고조선의 지리적 범위와 실체를 본래의 틀로 되돌리려는 의도였다.
그의 주장은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도 영향을 주었고, 실제 유적지 인식 변화로 이어지는 등 학계 밖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학계의 비판을 넘은 실증의 힘
윤 교수는 강단사학으로부터 ‘유사사학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역사는 권위가 아니라 증거로 세우는 것”이라며 “문헌과 고고학이라는 학문적 도구를 통해 고조선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철학을 고수했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조차도 “그의 고조선 연구는 문헌에 근거한 설득력 있는 재해석”이라며 학문적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 그의 연구는 논란을 넘어 논쟁의 가치가 있는, 살아 있는 지적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 대중과 호흡한 ‘정통 사학자’의 삶
윤내현 교수의 강의는 학문을 넘어 대중과의 교감을 이끌어냈다.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공개 강연에는 1,500명이 넘는 청중이 운집할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이는 그가 단순한 ‘학자’를 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정통 역사학자’였음을 입증했다.
그의 대표 저작인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 등은 리디북스·예스24 등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며 독자들의 공감과 신뢰를 받아왔다.
● 내셔널리즘을 넘은 균형 잡힌 시야
윤 교수는 민족사학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되, 단순한 내셔널리즘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중국사와 동양사 전반에 대한 학문적 깊이까지 겸비하며, 민족 중심의 역사관과 보편 학문의 균형을 갖춘 보기 드문 ‘이중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역사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비판적 사유를 견지하며,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선을 잃지 않았다.
● 학문의 길, 그 정신은 살아 있다
“우리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이는 고인이 평생 되뇌던 말이자, 대한민국 고대사학계에 남긴 메시지다.
그의 연구는 과거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과 기억, 그리고 미래 세대의 사유 기반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의 치열한 기록과 학문적 유산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대한민국 역사교육과 정체성 회복에 길이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삼가 고인의 뜻을 이어
윤내현 교수의 타계는 우리 역사학계의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저작과 신념, 그리고 학문적 실천은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역사적 자각의 길에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강단과 필봉, 실증과 상상, 학문과 실천을 오롯이 껴안고 걸어간 한 사학자의 길 앞에 진심을 담아 고개 숙여 추모 드린다.
상주 윤장원‧윤진원 (아들), 김정오 (배우자) 외 유족 일동
빈소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
발인 2025년 7월 2일(수) 오전 7시 30분
화장 서울추모공원 오전 9시 10분
장지 천안공원묘원
차보람 기자 carbor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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