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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는 하나가 아니었다"… 윤창열 교수, 『환단고기』 통해 열개의 부여 조명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고대 부여의 역사를 분석한 윤창열 대전대학교 명예교수의 발표가 7월 20일 2025 대한국제학술문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윤 교수는 『환단고기를 통해서 본 열 개의 부여와 부여 천 년의 역사』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원시부여에서 시작하여 남부여에 이르기까지 총 10개의 부여 계열 국가와 그 천 년에 걸친 역사적 계승 과정을 심도 있게 설명하였다.

1. 원시부여 
2. 대부여
3. 북부여(해씨부여)
4. 졸본부여,동명부여(후기북부여)
5. 동부여(가섭원부여,하부여)
6. 갈사부여(북갈사)
7. 동부여후(남갈사)
8. 연나부부여(낙씨부여,서부여)
9. 두막루(대막루,대막로,달말루)
10.남부여

윤 교수는 논문에서 원시부여를 초대 단군의 넷째 아들이 부여를 봉한 땅으로 규정하고, 이 지역을 지금의 길림성 농안 장춘 일대로 비정하였다. 이는 이후 모든 부여 명칭의 시원적 근원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BCE 425년부터 시작된 대부여의 계보와 구체적인 국호 변경, 정치적 이동 등을 설명하며 고조선의 국통과 부여의 맥을 연결지었다.

특히 윤 교수는 부여의 실질적인 시조를 해모수로 보고, 해씨부여를 중심으로 한 북부여의 시기를 BCE 239년부터 BCE 86년까지 154년으로 규정하였다. 이어 동명부여, 졸본부여를 '후기북부여'로 명명하며, 이들이 백악산 아사달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밝혔다. 이후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 BCE 37년에 동명부여에서 독립하여 국호를 고구려로 바꾼 역사적 맥락도 소개하였다.

논문은 또한 다양한 부여 계열 국가를 계보적으로 정리했다. 동부여에서 갈사부여와 남갈사부, 서부여(연나부부여)로 이어지는 계열과, 두막루국, 남부여까지 망라하여 총 10개의 부여를 계통적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CE 22년부터 CE 494년까지 473년간 지속된 서부여의 역사, 그리고 백제 성왕이 사비로 천도하면서 잠시 사용된 남부여라는 국호도 소개되어 관심을 모았다.

윤창열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환단고기에 기록된 부여의 계보가 단일국가가 아닌 복합적 문화권과 정치세력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임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기존 역사 교과서에서 간과되었던 부여사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윤 교수는 끝으로, 부여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서는 '누가, 어디서, 언제 건국했으며, 얼마나 지속되었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인물, 지리, 연대 등을 무시한 채 단일한 '부여'로만 인식하는 관행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한국사의 잃어버린 고리인 부여사를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라고 당부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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