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아침 뉴스를 본다. TV를 켜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포털 사이트를 습관적으로 스크롤하며 세상의 소식을 접한다. 어떤 이는 ‘세상이 흉흉하다’고 한숨짓고, 또 다른 이는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지’라며 채널을 돌린다. 그런데 문득,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된다. 뉴스란 도대체 무엇인가?
‘뉴스(news)’라는 말은 현대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지만, 그 어원을 되짚어보면 그리 오래되거나 깊은 철학을 품은 단어는 아니다. ‘news’는 본래 ‘new’—새로운 것—에 ‘s’를 붙여 복수형처럼 만든 말이다. 즉, ‘new things’, ‘새로운 것들’이라는 뜻에서 출발한 단어다. 중세 영어에서 newes로 처음 쓰였으며, 14세기부터 ‘새롭게 일어난 일들’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정착되었다.
민간어원 중에는 재미있는 해석도 있었다. 동서남북(North, East, West, South)의 머리글자를 따와 ‘news’가 네 방향에서 온 소식이라는 설. 그럴듯하지만, 언어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다. 뉴스란 결국 "new한 것들", 다시 말해 ‘새롭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모음집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순한 단어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진 않은가. 진실, 정의, 객관성, 공정성… 때로는 뉴스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고, 때로는 그 뉴스 때문에 절망한다. 하지만 원래의 뜻으로 돌아가보자. 뉴스는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새로운 것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며, ‘의미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언론은 ‘속보’를 경쟁하듯 쏟아낸다. 그 홍수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는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통찰은 희박하고, 감정은 피로하다. 알고는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접했지만, 곧 잊어버린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뉴스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정말 새로운 것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감정을 조작당하는 일상의 루틴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
뉴스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다주는 ‘새로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이어져야 한다. ‘뉴스’가 그 본래의 뜻을 넘어서 ‘알아야 할 것’이 아니라 ‘생각해야 할 것’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당신이 본 뉴스는 ‘new’했는가? 아니면 just noise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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