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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다시 불러내는 대한광복단의 이름
김상옥 의사의 쌍권총 미니어쳐

오는 9월 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된다. 바로 대한광복단과 의열단의 활동을 되새기며, 독립운동을 넘어 광복전쟁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다.

대한광복단은 1910년대, 나라를 빼앗긴 절망의 시기에도 총과 뜻을 모아 싸웠던 조직이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3·1운동이나 임시정부 활동만큼이나, 대한광복단의 무장투쟁은 일제 강점기에 강렬한 빛을 발했던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단순한 역사 되새김이 아니다. ‘독립운동에서 광복전쟁으로의 프레임 전환’이라는 주제는, 우리가 독립운동을 단순히 수동적 저항으로 볼 것이 아니라 ‘광복을 위한 능동적 전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발표 주제들을 들여다보면 더욱 흥미롭다. 대한광복단의 위상을 다루는 발표부터, 김상옥 의거의 사상적 기반, 영호남 지역에서 이어진 무장 활동까지. 이름은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모두 우리가 잊고 지냈던 독립의 현장을 되살리는 이야기다.

80년 전, 선조들은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 수 없다”는 절박함 하나로 몸을 던졌다. 지금 우리의 자유와 번영은 바로 그들의 피와 희생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첫걸음일 것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학술회의는, 과거를 기리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자리다.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선조들의 투쟁의 역사를 다시 불러내는 일은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책임이자, 역사광복을 이루기 위한 우리들의 작은 몸부림일 것이다.

한편 김상옥 의사는 풍기의 채기중 등 10여 명과 함께 3·1운동 이전에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였고, 1916년 5월에는 김 의사를 포함한 네 명이서 전남 보성의 일본헌병대 분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지역에 연고를 둔 친일 악질분자 세 명을 처단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군자금 모집과 무기 확보 등 비밀리에 진행되는 항일 활동에 참여하며, 직접 행동을 통한 독립 투쟁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대한광복단의 경험은 그가 이후 의열단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920년대 초, 김상옥은 약산 김원봉이 주도한 의열단과 연결되어 본격적인 의열 투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조선총독부와 경찰서를 겨냥한 폭탄 투척 계획에 가담했고, 1923년 1월 서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심장을 직접 타격했다. 의거 직후 천 여명에 가까운 일본 경찰에 포위되었지만, 김상옥은 끝까지 총을 들고 격렬한 교전을 벌이다 장렬히 순국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 10여 명이 사상당하며 일제 당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김상옥 의사의 투쟁은 단순한 무장 행동을 넘어, 희망을 잃은 당시 조선 민중에게 ‘끝까지 저항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대한광복단에서 이어받은 무장투쟁 정신은 의열단 활동 속에서 도시 한복판을 흔든 의거로 구현되었고, 이는 일제의 공포정치에 맞서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상징적 의의로 평가된다.
 

 

차보람 기자  carbor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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