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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피터슨 교수의 ‘환단고기 위조론’을 비판하며

“사이비 교수들, 사이비 학자들, 환단고기는 위조다.”

마크 피터슨 교수의 이 발언은 순간 귀를 의심케 한다. 과연 어느 시대, 어느 학자가 학문적 토론을 이런 방식으로 대신할 수 있는가?

마크 피터슨 교수

‘사이비’라는 낙인의 폭력

학문은 증거와 논증으로 서야 한다. 그러나 피터슨 교수는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이들을 단번에 “pseudo-scholars”라 몰아붙인다. 이는 더 이상 학문적 비판이 아니라 낙인찍기다. 학계의 권위를 방패삼아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반(反)학문적이다. 이로써 토론은 봉쇄되고, 학문은 죽는다.

믿는다/안 믿는다’의 함정

그는 환단고기를 두고 “정확하다/부정확하다”가 아니라 “믿는다/안 믿는다”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교묘한 왜곡이다. 환단고기를 단순히 신앙의 텍스트로 치부해버리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단서와 검토해야 할 사료적 맥락은 송두리째 사라진다. 학문은 비판적으로 읽고 따져보는 행위이지,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적 교리 싸움이 아니다.

환단고기와 대륙삼국설의 혼동

피터슨 교수는 환단고기 연구자들을 ‘백제, 신라, 고구려가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혼동이다. 환단고기의 서술과 이른바 대륙삼국설은 구분되어야 한다. 두 가지를 무더기로 묶어 ‘위조’라 단정하는 것은,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성급히 던지는 매도에 불과하다.

‘위조’라는 단정의 가벼움

역사 문헌을 ‘위조’라고 단정하려면 방대한 사료비교, 언어학적 검증, 필사 전통의 추적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터슨 교수는 단 한 줄의 과학적 근거도, 구체적 문헌 비판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의견”이라며 치부한다. 학문을 자처하는 자가 증거를 버리고 의견만 남겼을 때, 그 순간 그는 스스로가 ‘사이비 학자’임을 고백하는 셈이다.

한국을 아끼는 학자라면

더 아쉬운 점은 피터슨 교수가 한국을 누구보다 아끼고, 한국 문화를 사랑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여온 학자라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정작 한국사의 논쟁적 텍스트를 다루면서는 근거 없는 단정과 낙인을 남발하며 한국의 역사를 모독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는 점이 더욱 뼈아프다. 애정을 가진 학자라면 더욱 신중히, 더욱 깊이, 더욱 존중하는 태도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그럴수록 그의 이번 발언은 실망과 아쉬움을 크게 남긴다.

결론: 학문은 낙인이 아니라 검증이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란은 분명 복잡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환단고기를 비판하려면 차갑고 냉철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단순 낙인으로는 아무 것도 밝혀낼 수 없다. 피터슨 교수의 발언은 한국사 논쟁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적 진영 싸움으로 몰아넣는다.

학문은 결코 ‘사이비’라는 낙인으로 대신할 수 없다.
학문은 증거와 논증으로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검증의 장에서 환단고기도, 식민사학도, 그 누구의 주장도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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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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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엥 2025-09-12 15:17:04

    나도 학문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환단고기는 사이비 맞잖아... 환단고기가 옳다고 계속 연구하는 학자(학자가 맞는지도 의심)들은 주장하는 내용들은 지구평평설 주장하는 유사과학자들과 다를바 없더만   삭제

    • Superjang 2025-09-06 23:01:22

      학자의 양심을 의심케 하네요.
      많은 논문들이 사실을 증명하는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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