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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와 함께한 가야의 500년 역사2회. 가락중앙종친회의 김해김씨와 허씨 그리고 인천이씨와 양산이씨

오늘은 두 번째 연재의 시간으로 가락중앙종친회를 구성하고 있는 김해김씨와 허씨 그리고 인천이씨와 양산이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천이씨와 양산이씨가 가락중앙종친회와 함께하는 이유

인천이씨가 가락중앙종친회에 함께하는 이유는 756년 신라 사람 허기(許奇)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755년 ‘안녹산의 난’으로 촉나라 수도 성도(成都)에 피신해 있던 당나라 6대 황제 현종(이융기)이 장안으로 복귀하는 데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 공으로 현종으로부터 황성(皇姓)인 이(李)씨 성을 하사받았습니다.

신라 경덕왕은 돌아온 허기에게 이씨 성을 인정하고, 인천의 옛 지명인 소송(邵松)의 백(伯)으로 봉했습니다. 이후 소송은 경원과 인주를 거쳐 지금의 인천으로 굳어졌습니다. 인천이씨의 시조 허겸까지는 10세 동안 허씨와 이씨의 복성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허겸의 손자인 이자연의 세 딸은 모두 고려 문종의 비가 되었으며, 특히 장녀인 태후 이씨는 11세에 출가하여 천태종을 창시한 대각국사 의천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가락중앙종친회의 구성 (이미지 제작: 한문화타임즈)

그리고 양산이씨(梁山李氏)는 경상남도 양산시를 본관으로 하며, 가락중앙종친회와 함께하는 성씨입니다. 시조 이만영(李萬英)은 인천이씨 출신으로 고려 말 문과에 급제했으며, 조선 태조 때 공신으로 이조판서를 지냈습니다. 그의 아들 이전생(李全生)은 풍수지리에 능통한 인물로, 고려 공민왕 때 순무어사로 전국을 순찰하다가 양산 하북면 삼수리에 이르러 이곳이 명당임을 알고 정착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세 아들 징석(澄石), 징옥(澄玉), 징규(徵奎)를 두었고, 이들이 모두 무과에 급제하면서 가문이 크게 융성했습니다. 특히 장남 이징석은 예조판서와 중추부사를 지내고 양산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양산을 관향으로 삼아 계대를 이어왔습니다.

김해김씨를 대표하는 4개 주류파

김해김씨는 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13세 김유신을 중시조로 삼아 여러 분파가 갈라졌습니다. 고려 말 원 간섭기에는 시조대왕으로부터 51세인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김녕군파), 동생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감무공파), 49세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판도판서공파), 55세 김탁(金琢)을 중시조로 하는 시중공휘탁파(侍中公諱琢派·문경공파) 등이 대표적인 주류 파입니다. 이들은 모두 김유신의 직계 종파에 속합니다.

또한 김목경의 7대손 영정(永貞)으로부터 이어지는 계통은 경파이면서도 별도로 안경공파(安敬公派)라 불립니다. 김해김씨는 1802년 정리된 임술보에서 98개 분파로 나뉘었으며, 1922년 간행된 임술석장대동보에서는 148개 파로 확장되었습니다. 현재는 그보다 더 많은 분파로 이어져 계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와 함께한 가야의 500년 역사

오늘날 국정 교과서에서는 김수로왕의 가야 건국과 10대에 이르는 금관가야 왕들의 계보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아, 가야의 실재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는 일제의 역사 왜곡과 『삼국사기』·『삼국유사』가 삼국 중심으로 기록된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금관)가야국 왕 계보

그러나 가야는 42년에 건국하여 532년 10대 구형왕까지 약 500년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대가야의 멸망인 562년까지 본다면 520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존속했습니다. 가야의 건국시기는 신라 3대 유리왕 19년, 고구려 3대 대무신왕 25년, 백제 2대 다루왕 15년과 같은 시기였습니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

최근 가야 고분군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가야사의 진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발굴된 유물과 유적을 통해 가야가 삼국에 뒤지지 않는 문화적 역량을 지녔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사가 교과서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현실은 아쉬운 점입니다.

가야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곧 한민족의 역사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국가와 학계, 국민이 함께 지속적으로 연구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이를 통해 후대 교과서에서 가야사가 정당한 위상을 갖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3부가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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