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민출신의 의병대장으로 농민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선봉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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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민출신의 의병대장 신돌석 선생 (그림) |
독립운동가 신돌석 선생(1878.11.3 ~ 1908.11.18)은 평민출신의 의병대장으로 일반 농민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선봉하였다.
누(樓)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고/낙목이 가로놓인 조국을 탄식하네/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문뜩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이는구나.
-1905년 선생이 평해 월송정에 올라 읊은 시-
초기 의병 운동이 주로 유학자들, 요즘말로 집안 좋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평민 출신이었던 신돌석 의병장은 최초의 평민 의병장으로 유명합니다.
주로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태백산, 소백산 주변에서 활약하였는데, 신돌석 의병장은 1878년 11월 26일 경상도의 평범한 농가에서 출생했습니다. 을미사변을 통해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기에 당시 18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영덕지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키게 됩니다.
신돌석 의병장은 경상북도 동해안 지방을 차례로 점령하는 큰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에 경북 출신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김하락 의병부대와 안동지역에서 활동하던 유시연 의병장과 함께 병력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김하락의 의병 연합 부대가 영덕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하여 김하락이 중상을 입고 투신 자살함으로써 그의 의병대도 해산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전체 의병들의 사기는 크게 저하되게 됩니다. 그러나 신돌석 의병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휘관으로서 리더쉽을 발휘해 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 이후 동생 신우경과 함께 재차 의병을 일으킵니다.
그의 활약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울진군에서 일본 선박을 여러 척 격침시켰고 강원도 동해안 일대, 경상북도 내륙 지방, 원주 등 강원 내륙 지방까지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이때부터가 바로 신돌석 의병장의 유명한 별명인 '태백산 호랑이'가 탄생하게 됩니다.
신출귀몰한 업적으로 이름을 날렸고 여러 구전 전설들도 만들었습니. 끊임없는 연합 작전을 시도하는 등 계속되는 전과를 올리면서 경북 일대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양반 출신의 유학자 의병대장들도 그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정도로 그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1908년부터는 유시연 의병장의 부대와 다시 연합작전을 펼치면서 주로 유격전 위주의 의병 항쟁을 펼쳤으나, 그해 겨울 영덕의 눌곡(訥谷)에서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에 의해 암살됨으로써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의병장은 그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 출처 : 장성규의 독립운동가 앱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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