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바 파란 성당 옆, 조용히 세워진 기념비 하나가 눈길을 끈다. 돌 위에 청동으로 뱀이 감긴 형상, 그 아래 모자이크 글귀는 이렇게 말한다.
“NenaroDeným ― 태어나지 못한 생명들에게.”
화려한 성당 건물 옆에서 이 작은 조형물은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그 앞에 놓인 꽃과 초는 이곳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님을 알려준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낙태와 유산으로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이름도, 무덤도 없이 사라진 생명들. 이 기념비는 바로 그들을 위한 추모의 자리다. 인간의 선택과 사회의 조건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영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차가운 돌과 파란 모자이크가 침묵으로 울고 있다.
“한 사람의 원한(寃恨)이 능히 천지기운을 막느니라. 뱃속 살인은 천인공노할 죄악이니라. 그 원한이 워낙 크므로 천지가 흔들리느니라.” (증산도 도전 2:68)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진실
슬로바키아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낙태의 수치가 높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숫자까지 고려한다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매년 수천만 명의 생명이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인류는 눈부신 과학과 문명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미래를 지우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처녀나 과부의 사생아와 그 밖의 모든 불의아의 압사신(壓死神)과 질사신(窒死神)이 철천의 원을 맺어 탄환과 폭약으로 화하여 세상을 진멸케 하느니라.”
(증산도 도전 2:68)
문명의 시험대 앞에서
이 작은 기념비는 단순한 추모물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편리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지워버린 그 수많은 생명 앞에서, 우리는 정말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낙태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권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의 양심과 직결된 문제이며, 문명이 감당해야 할 도덕적 시험대다.


브라티슬라바 파란 성당 옆, 조용히 세워진 기념비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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