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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최초 만남이자 궁극의 결합 그리고 '허'5회. 가락중앙종친회의 김해김씨와 허씨 그리고 인천이씨와 양산이씨

오늘은 다섯 번째 연재의 시간으로 지난 4회의 이어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결혼이 가지는 궁극의 의미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 흔히 성씨로 이해하는 허씨의 '허'에 대해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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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은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대융합의 상징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결혼은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최초 만남이자 궁극의 결합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가야 땅에서 출토되는 각종 북방 유물과 함께 쌍어 문양 및 불교문화의 흔적 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김씨의 최초 뿌리가 되는 흉노, 그리고 흉노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뒤 약 200년 후에 나타난 훈(HUN)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이 유라시아로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시작된 신어 사상이 인도의 쌍어 문양과 관련한 생활문화를 거쳐, 김수로왕과 허황후 두 분의 결혼을 통해 인류 영성문화의 원고향인 한반도로 다시 돌아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서양 점성학의 황도 12궁과 김수로왕 정문의 쌍어문양

일각에서는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시작된 인도의 쌍어 문양이 서양 점성학(천문학)에서 말하는 황도 12궁 중 물고기자리(쌍어궁 시대)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가야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이 상징이, 새로운 시간대인 물병자리, 즉 보병궁(寶甁宮)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의 ‘프리즘 존’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곧, 그러한 시대의 주인공이 바로 모든 신교문화를 이어온 한민족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합니다.

점성학자 페닉스 노아는 “현재 인류가 살아가는 시간대는 쌍어궁 시대의 말기이며, 곧 대변혁의 과정을 거쳐 인류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 즉 보병궁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허황후의 성씨로 알려진 ‘허’는 본래 성씨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고학자 김병모(金秉模) 교수에 따르면,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 가운데 세습되는 직업인 무사(巫師)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허’는 제사장이나 최고의 신앙 지도자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궁극의 차원에서는, 이것이 ‘디오니시우스의 기도’에 등장하는 ‘침묵의 투명한 어둠’ 또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의 광명’을 상징하는 경계 혹은 존재를 나타내는지도 모릅니다.

 

보주 허여황옥이라 기록된 금석문의 모습

중국 사천성 안악현에서 발견된 후한 시기의 금석문 『신정기(神井記)』에는 “보주(普州)와 허여황옥(許女黃玉)”이라는 명문이 나옵니다. 이를 흔히 ‘보주에 허황옥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었다’고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황옥이라는 이름의 여성 무사(巫師), 즉 제사장과 같은 신앙 지도자가 있었으며, 이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정통성을 계승할 대표자였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허여황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로 이어집니다.

당시 수만 명의 인도인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오직 ‘허녀황옥’만이 특정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황옥이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정신적 지도자로 선택된 인물이었거나, 그와 비견될 만큼의 역량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허황후는 왕족 출신이자 제사장과 같은 직위를 맡은 신성한 가문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허여황옥 선대 일가가 중국으로 이주한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 신분을 상징하던 ‘허’의 의미는 점차 희석되고 당시 중국 사회의 일반적인 성씨 개념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6부가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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