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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피터슨, 우물 밖 개구리를 자처했지만

미국 학자 마크 피터슨은 한국사 연구에서 조선 사회의 효(孝)와 유교적 가치, 신분 질서를 독창적으로 분석하며 국제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스스로를 마치 ‘우물 밖 개구리’처럼, 한국인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의 전달자로 여겼을 것이다. 일정 부분 우물밖의 시각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시각은 더 넓은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작은 웅덩이 속에서 보는 시각에 불과했다.

피터슨은 한국사를 조선에 국한시키며 고대사의 거대한 지평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외면했다. 상고사의 역사의 흐름은 그의 논의에서 공백으로 남았다. 이는 식민사학이 그어놓은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일제 식민사학의 핵심은 바로 그가 치밀하게 연구하지 못한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와 이를 계승한 부여사, 삼국의 역사 등에 있었다.  그는 우물을 벗어났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더 깊고 좁은 우물 속에 스스로 들어가 버린 셈이다.

특히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라 치부하며 연구의 대상으로조차 삼지 않은 태도는 한계를 보여준다. 환단고기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극복하고 한국사의 상고사를 복원하는 열쇠다. 그럼에도 피터슨은 강단사학계가 퍼뜨린 위서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스스로 비판하던 “우물 안 시각”을 답습한 셈이다.

물론 외국 학자에게 우리의 시원사까지 온전히 꿰뚫어 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들의 연구 여건과 배경을 감안할 때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겸손의 부족과 오만한 태도다. 스스로 우물 밖에 있다고 자임하며 한국사에 대한 최종적 해석을 내리려 한 태도는 학문적 성실성을 흐린다. 외국인 학자가 한국사의 일부만 보고 논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좁은 관찰을 전체인 양 단정하는 오만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마크 피터슨은 한국학의 확산에 기여했지만, 결국 우물 밖 개구리를 자처한 또 다른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그의 시각은 식민사학의 잔재를 넘어서지 못했고, 환단고기 위서론을 답습하며 스스로 학문적 깊이를 제한했다. 외국인 학자에게 모든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의 겸손과 열린 태도,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세만큼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학자의 기본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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