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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애써 숨기려 하는 가야의 역사 세 가지7회. 가락중앙종친회의 김해김씨와 허씨 그리고 인천이씨와 양산이씨

한국과 일본을 잇는 고대사의 수수께끼 속에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이 공개적으로 다루길 꺼리는 사실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가야(伽倻)와 김수로왕,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일본 열도에 남긴 흔적이 있다.

이번 호에는 그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를 다루고 다음 호에 세 번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 첫째는 일본 규슈 곳곳에 남아 있는 ‘일곱 왕자’의 전설입니다.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장유화상과 함께 수행하다 득도해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왔으나, 일본 규슈에는 이와 맞닿는 지명과 설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규슈 가고시마 시의 ‘나나쿠마노사토(七熊の里, 일곱 곰의 마을)’는 ‘일곱 사람의 김(金)씨가 살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가야 7왕자와 규슈의 일곱 곰의 마을

동아일보가 1997년 펴낸 이종기 선생의 저서 『춤추는 신녀 – 일본의 첫 왕은 한국인이었다』는 “神(신)”이 한국 고대어 ‘감, 검’에서 비롯되어 ‘김, 곰, 금’과 통하고, 일본에서 ‘가미’로 변했다는 언어학적 추적을 통해 규슈 지역의 ‘구미-’식 지명이 가야와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을 증명한다고 밝힌다.

 

규슈에 있는 나나쿠마노사토 즉 일곱개의 마을

재야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고(故) 박병식 선생도 2008년 강동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과 함께 규슈 현지를 답사하며 ‘일곱 곰의 마을’ 전설을 직접 확인했다. 일본 문화재관리국에서 퇴임한 후지나미 씨는 가야 일곱 왕자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7개 마을의 옛 지명과 발음을 지도에 표시해주며 “나나쿠마노사토는 단일 마을이 아니라 고쿠후(國分)시에 흩어져 있던 7개의 마을이었다”고 증언했다. 에미쿠마(笑熊), 토미쿠마(富熊), 시시쿠마(獅子熊), 호시쿠마(星熊), 히라쿠마(平熊), 코이쿠마(戀熊), 쿠마사키(熊崎)가 그 이름들이다. 

 

가야 일곱왕자를 기념하는 신사와 행사 그리고 유적

이 밖에도 ‘칠사신사(七社神社)’와 ‘7항(七港)’ 등 일곱 왕자와 관련된 유적과 행사가 규슈 각지에 남아 있어, 그들이 단순히 득도하여 열반에 든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건너왔음을 시사한다. 일본 학자 아라타 에이세이(荒田榮誠) 역시 1989년 저서 『신무천황 발상의 본관』에서 일곱 왕자의 규슈 도래설을 발표해 역사학계를 뒤흔든 바 있다.

둘째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족보 발행 금지 사건이다. 1914년 간행된 『김해김씨세보』는 이듬해 조선총독부가 ‘치안상의 이유’를 들어 발간을 금지했다. 이 사실은 1977년 『신동아』 1월호 부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일제의 금서 조치 목록

재일사학자 박병식 선생은 1991년 한일문화강좌에서 “조선총독부의 이 조치는 히미코가 다스린 야마대국의 정체, 그리고 김수로왕 왕족들이 고대 일본 왕가를 이루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탄로 나는 것을 두려워해 취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신화에서 황실의 시조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규슈 남쪽 미야자키현의 구시후루다케(久士布流多氣, 龜旨峯)에 내려왔다고 전하는데, 이는 가야 구지봉의 전승과 닮아 있다. 부근에는 ‘한국악(韓國岳)’이라 불리는 산도 있어 이 신화의 뿌리가 한반도, 특히 가야에 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8부가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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