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국내 최대 규모의 AI 클러스터에 ‘해인(海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인'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를 참고했다고 한다. SK텔레콤 B200 클러스터가 디지털 팔만대장경을 품은 K-소버린 AI 인프라로 거듭나겠단 의미를 담고 있다. 기술의 상징에 불과할 수 있는 이름이지만, 사실 해인은 동아시아 사상과 한국 전통 속에서 깊은 뿌리를 가진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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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브로드밴드 가산 AI DC에 구축된 B200 클러스터 ‘해인’의 모습./SK텔레콤 제공 |
불가에서는 해인삼매(海印三昧)를 말한다. 이는 바다의 거울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지혜의 경지다. 해인사(海印寺)의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해인의 의미는 불교적 차원을 넘어 한국 고유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고대 전통에서 해인은 우주의 근원 질서를 담은 도장이자,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열 때 등장하는 상징으로 전해졌다.
17세기 유명한 비결서 『격암유록』은 해인을 “죽었던 자도 다시 살리는 불가사의한 도장”으로 묘사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인류를 살려내는 구원의 표징으로 이해됐다. 20세기 초 동학과 증산도의 사상에서도 해인은 인류가 대변혁의 시대를 맞을 때 사용되는 ‘하늘의 도장’으로 언급된다. 즉 해인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고 새 세상을 여는 문명적 상징을 지닌 실물인 것이다.
『도전』에는 해인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가 전해진다. “잘 믿는 자에게는 해인을 전하여 주리라.” .... “세상 사람들이 해인사에 해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또 정씨의 것이라 하나, 실물은 없고 기운만 있는 것을 내가 가지고 왔으니 일심자(一心者)에게 전하여 주리라.”(『道典』 7:30)
이 구절은 해인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오직 일심자(一心者)에게 전해지는 실재적 힘임을 증언한다.
오늘날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며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바꿀 수는 있어도,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물음―삶과 죽음, 공존과 생존의 문제―에는 답하지 못한다. 해인이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데이터와 연산을 넘어서는, 근본의 진리와 생명의 가치 말이다.
AI 클러스터의 이름으로 다시 세상에 드러난 해인. 그것은 기술을 넘어선 지혜, 경쟁을 넘어선 조화, 그리고 문명의 전환기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뿌리를 일깨우는 이름이다. 어쩌면 지금의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보다도, 해인이 상징하는 근원적 성찰일지 모른다.
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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