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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전 오늘, 가야의 왕과 인도 공주의 사랑이 시작되다
2019년 우정사업본부가 인도 우정청과 함께 한국-인도 공동우표 2종을 발행했다. 

음력 7월 29일! 이날 펼쳐진 가야 건국의 주역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은 단순한 혼인이 아니라 동서 문명 교류의 상징이자, 고대 한반도에서 펼쳐진 세계사의 한 장면이었다. 또한 궁극에는 남방문화와 북방문화에 전승되어져 오던 신교문화의 합덕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두 번째, 「가락국기」는 그 극적인 만남과 성혼, 입궐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건무(建武) 24년 무신 7월 27일, 가락국의 최고 회의체인 구간(九干)들이 왕 앞에 조회했다. 이날 수로왕은 유천간과 신귀간에게 각각 망산도(望山島)와 승점(乘岾)으로 나아가 경계 임무를 맡기게 한다. 며칠 후, 바다 서남쪽에 붉은 돛을 단 배가 나타났다. 유천간이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들자 신귀간이 이를 보고 급히 대궐로 달려가 왕에게 보고했고, 구간들이 나가 맞이하게 된다.

 

허황옥의 배가 들어오는 것과 이를 보고 있는 구간들의 모습, 이미지출처=KBSkids

그 배에는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온 공주, 허황옥이 있었다. 배가 정박하고 그녀의 모습이 보여짐에, 처음엔 구간들이 “대궐로 가자”며 권하자 “나는 본래 너희들을 모르는데 어찌 경솔히 따라가겠는가”라며 사양한다. 이에 수로왕은 대궐 서남쪽 60보 지점에 장막을 치고 임시 궁전을 설치, 직접 맞이할 준비를 한다.

허황옥은 별포(別浦) 나루에 배를 대고 언덕으로 올라와 산신령에게 폐백을 올린다. 그리고 점차 왕이 있는 곳에 다가가자 수로왕이 직접 나아가 그녀를 맞이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유궁(帷宮)으로 들어간다. 왕은 그녀와 함께 온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며 금은보화를 하사하고, 허황옥은 자신이 아유타국 공주임을 밝힌다.

 

김해 해은사에 그려진 허황옥 신행 항해 벽화

허황옥의 결혼 항해를 최초로 발굴했던 향토사학자 故 이종기씨는 산신령에게 폐백을 올리는 허황옥의 예식은, 인도 리그베다 결혼 찬가에서 밝히는 순결성을 나타내는 폐백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선문대대학원 이거룡 교수는 이러한 예식이 인도의 전통적인 결혼 풍습과도 상당히 닮아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수로왕과 허황옥은 혼인 후 이틀 밤과 하루 낮을 함께 보낸 뒤, 8월 1일 정오(午正)에 수레를 타고 대궐로 돌아왔다. 이를 역산하면 두 사람의 성혼은 7월 29일 낮으로 추정된다. 29일 밤, 30일 낮과 밤을 함께 지냈다는 기록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유궁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1,900여 년 전 이 역사적 장면을 되새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허황후의 배가 붉은 돛을 달고 동쪽 바다를 건너왔을 때, 그 배는 단지 한 공주를 실어온 것이 아니라,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만남이며 융합을 이루어냈다. 또한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은 가야와 아유타국을 이어주는 다리였고, 오늘날까지도 한국과 인도 사이에서 우정과 문화 교류의 이야기로 회자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결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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