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내현 교수의 명저 ‘고조선 연구’에 의하면 강단학파 학자들이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으로 보며 한반도 내에 위치한 아주 미약한 나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중국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고조선은 난하를 국경으로 만주 땅을 대부분 차지하여 국력이나 문화수준도 중국의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국력을 가진 강대국이었다. 특히 고조선은 높은 수준의 청동합금기술과 가공기술을 모두 갖추었고 용도에 따라 합금의 비율을 달리해 사용하는 응용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청동거울이나 장식품을 만들 때는 주석의 비율을 다소 높여 광택이 잘 나고 녹이 슬지 않도록 했으며 무기를 만들 때는 주석의 비율을 낮게 하여 질기고 강도를 높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조선의 유적에서 청동실을 엮어 짠 장신구가 출토되었는데 그 실의 직경이 0.25밀리미터였다고 한다. 이렇게 가는 청동실을 생산하는 것은 지금의 기술로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고조선시대에 이미 우수한 과학기술과 높은 문화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고조선은 수공업도 매우 발달하였다고 윤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압록강 북쪽 길림성 성성초의 고조선 유적에서는 모직물이 출토되었는데 양털실과 개털을 섞어 짠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원시적이기는 하나 방직기를 사용해서 짠 것으로 지금 생산되는 약간 낮은 질의 모직물과 같은 수준으로 우수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최상의 모직물이 고조선에서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에 활, 화살, 화살촉 등의 무기와 특수한 동물가죽 그리고 모피의류와 모직의류 등을 수출했다. 이것들은 중국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물품이 중국에 수출되었을 것이다.
고조선 지역에서는 명도전을 포함한 청동화폐도 아주 많이 출토되고 있다. 최근에는 명도전이 고조선의 것이라는 학설도 유력한 학설로 대두되고 있다. 사실이 아니라 해도 고조선은 다양한 물품을 외국에 수출한 무역 국가이며 외화보유국임을 보여주는 단서이다.
맹자(孟子)에 따르면 고조선의 세율은 수확의 1/20이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수확의 5/10를 세금으로 거둬들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8/10까지도 징수하였다.
고조선에서 이렇게 작은 세금을 거두면서도 나라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왕궁이나 종묘를 크게 짓지 아니하고 왕릉도 크게 만들지 않으며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대신들 사이에도 폐백(幣帛)을 주고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맹자는 설명하고 있다. 매우 검소하고 절약하는 정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제천의식을 하는 기간에는 남녀노소 차별 없이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춤추고 노래했다. 이것은 우리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신분에 따른 차별대우가 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조선에서 세율이 매우 낮았던 것과 사회신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것은 널리 세상을 유익하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이 정치와 풍속에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중국의 문헌에는 고조선으로 망명하거나 이주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고조선이 살기 좋은 사회였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기자와 위만도 그런 망명객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고조선은 연나라의 침략을 받은 적이 있다. 갑자기 연나라의 공격을 받은 고조선은 2천리를 후퇴했으나 바로 반격을 가하여 연나라 동부 땅을 모두 빼앗아 침략을 응징했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전국시대로 춘추시대 이래 수백 년 동안 전쟁은 계속되었고 이에 따라 새로운 무기와 전략 전술이 개발되었다.
손자병법이나 오자병법 등은 이 때 나온 병서들이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연나라는 실전 경험을 많이 갖고 있었다. 이런 연나라를 응징했다는 것은 고조선의 국력이 매우 강했음을 알게 해주는 단서들이다.
이처럼 고조선은 매우 높은 문화와 과학기술을 지니고 있었으며 발달한 무기와 수공업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여 많은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런 경제적 기반 위에서 백성들에게 아주 낮은 세금을 징수했고 신분에 따른 차별대우도 심하지 않았다. 지배층은 검약하는 정치를 하여 위아래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 |
|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