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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상 나의 뿌리, 나를 있게 해준 제1의 하나님10회. 가락중앙종친회의 김해김씨와 허씨 그리고 인천이씨와 양산이씨

연재 9회를 마무리하며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김해 김씨와 허씨 사이에 얽힌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가야사가 지닌 역사적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로 10회를 마치며,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는 김해 김씨와 흉노의 역사적 계보를 탐구하고, 김수로왕으로 이어지는 뿌리 깊은 인연을 살피며 독자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편집자 –

 

김해 김씨 종문

 

뿌리를 안다는 것과 은혜에 보은하는 것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당시 국민학교 3학년(현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이면 울산에서 혼자 기차를 타고 고향인 경북 석포를 찾아가곤 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는 어려운 한자 책 말고는 어린 아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었고, 오직 두 종류의 한글 잡지만이 서재에 꽂혀 있었다.

하나는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책자였고, 다른 하나는 불교에서 발행한 책자이며 정확치는 않지만 당시 이름이 ‘금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책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중 책자 중간 즈음 오른쪽 페이지 아래에서, 처음으로 김해 김씨의 독특한 이야기를 접했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 위에 점 3개가 찍혀 있는 그림과 함께 김해 김씨의 신체적 특징이 소개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아, 그렇구나’ 정도로만 이해하고 지나쳤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여러 김해 김씨분들 중 점의 숫자는 달랐지만 실제로 이러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삼국시대뿐 아니라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세운 가야국의 역사적 진실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때부터 김해 김씨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열리는 춘·추향대제에 참여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으며, 현재는 가락대전종친회 부회장을 맡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나를 있게해준 나의 뿌리에 대한 자각과 조상님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정성껏 활동하고 있다.

성씨조형물 조성과 중요성

가락중앙종친회의 최근 신년 하례회에서는 세 가지 주요 과제가 발표됐다. △종친회 종원들에 대한 종사 교육 △가야사를 비롯한 뿌리 역사 교육의 지속적 실시 △대전 뿌리공원 제2부지에 김해김씨 성씨조형물 건립이 그것이다. 필자 역시 뿌리공원을 찾는 많은 종친들이 김해김씨의 성씨조형물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하루빨리 이 조형물이 세워져 방문객들이 자신의 뿌리와 근본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보은의 마음을 새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왜곡된 가야사 바로잡기, 한민족 정체성 회복의 길

전라도천년사와 부산시사 등 지역 역사서에 나타난 왜곡된 가야사를 바로잡기 위해 시민단체와 역사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가락중앙종친회도 그 중심에 서 있지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현장에서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한 지방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한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가장 정확하게 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라진 문헌, 되찾아야 할 역사

가야사를 온전히 밝히기 위해 반드시 찾아야 할 문헌도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주 출처로 보이는 고려 문종 때 금관지주사가 지었다는 「가락국기」, 그리고 가락국의 왕력으로 알려진 개황력(開皇曆·개황록開皇錄)이다. ‘개황’은 ‘황국을 개창했다’는 뜻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 두 문헌은 가야사 복원의 결정적 열쇠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이 문헌들이 언젠가 우리 앞에 운명처럼 나타나길 희망하며 『가락중앙종친회의 김해김씨와 허씨 그리고 인천이씨와 양산이씨』 관한 연재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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