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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눌의 『깜박 잊은 우리말, 우리역사』 유자(儒者)의 광란
유위자有爲子의 삼신지도三神之道 중

BC 1833년 유위자(有爲子) 선사(仙士)는 ‘천년 후 광유(狂儒)가 만연하리라’고 예언했다. 예언처럼 천년 후 조선의 절대자와 사대부들은 숭유억불과 존주대의(尊周大義)를 빌미로 사료를 불태웠다.

여말선초 불교를 배격하는 배불론(排佛論)이 기승하고 척불소(斥佛疏) 즉, 부처를 배척할 것을 상소한다. 이 같은 현상은 조선조 내내 지속된다.

일례를 보자. 삼가귀감(三家龜鑑)은 청허 휴정(淸虛 休靜)이 저술했다. 불교계의 유교, 도교, 불교 삼교일치론(三敎一致論) 및 회통론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리우는 휴정의 이 서책은 시대 인식과 삼교에 대한 평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처음 지리산 단속사(斷俗寺)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목판본은 불태워지고 사천왕상(四天王像)과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끌어내 목을 잘랐다. 1568년(선조 1) 성여신(成汝信)이 동료들과 단속사(斷俗寺)에서 행해졌다는 기록이 부사집(浮査集)에 보인다. 성여신의 호가 부사(浮査)이다. 

책의 말미에 휴정은 “유교는 뿌리를 심고 도교는 뿌리를 배양하며 불교는 뿌리를 뽑는다”라는 옛말에서 그 순서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의 초학자를 위해 유교 · 도교 · 불교의 세 문호를 열어 서로 통하게 한다고 끝을 맺는다. 휴정은 또 “유가의 천(天)과 도가의 곡신(谷神)을 불교의 일물(一物) 또는 마음으로 회통(會通)시켜 삼교(三敎)를 아우르고자 한 것이다.”라 했다.

휴정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고승이다. 그는 명종 대에 승과에 급제한 후 선교양종의 판사를 지냈고 1592년 임진왜란 때 8도 도총섭으로 의승군을 일으켰다. 휴정은 조선 후기 최대 계파인 청허계의 조사로서 간화선(看話禪) 우위의 선교겸수를 주창하면서 선, 교, 염불을 종합한 삼문수행 체계의 틀을 제시하였다.

휴정의 저술로는 삼가귀감 외에도 청허당집(淸虛堂集), 선가귀감(禪家龜鑑), 선교결(禪敎訣), 선교석(禪敎釋), 심법요초(心法要抄) 등이 있다.

흔적만 남은 천년 고찰 단속사의 마당 한편에 태종조에 정당문학을 엮임 했던 강회백이 심었다는 매화나무 정당매(政堂梅), 참담했던 그 시절을 읽어 왔을까?  

조선조의 고사서 분서사건은 숭유억불의 명분 아래 여말선초부터 500년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광유(狂儒)의 광란은 진행형이다.

 

한문수/ 역사칼럼니스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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