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의 ‘양잠신(養蠶神)’을 모신 사당 "
지금부터 약 2천년을 전, 후로 일본의 미개한 원시 시대였던 이른바 [야요이 시대]에 한반도로부터 선진문화를 가진 한민족이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한민족은 하늘의 천신을 신앙하던 사람들이어서 그들이 왜땅으로 건너가면서 자연스럽게 [천신 신교(天神神敎)]를 퍼뜨리게 되었다.
천신 신교를 받들던 한민족은 벼농사를 위해 왜땅에 볍씨와 논밭을 경작하는 삽이며 괭이 등 농기구와 또한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 도구도 가지고 가서 [벼농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미개한 왜인들은 산언덕에다 땅굴을 파고 살면서 나무 열매와 바닷가 갯뻘에서 조개를 캐먹는 원시상태였다. (『日本史』西田 美昭(東京大 授)外 三聖堂, 平成4年). 그와 같은 사실은 일본 사학자들에 의하여 이미 18세기 경부터 고증(藤 貞幹)되어 온다.
일본의 옛 왕도 교토 땅에는 여러 가지 고대 신라문화가 오늘에까지 또렷하게 살아서 전해져 온다. 그러나 그 발자취를 아는 이는 드문 것 같다. 이를테면 ‘비단’이라고 하는 훌륭한 직조문화가 고대에 이 고장 일본으로 이주하여 온 신라인들에 의하여 전해져왔으며, 신라인들은 한민족의 ‘양잠신(養蠶神)’을 모신 사당까지 세우고 받들었던 유적지가 지금도 뚜렷하게 교토시내 중심가인 ‘우수마사(太秦)’ 거리에 자리하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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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羅王碑] 明治35年(西紀1902年) 6월 건립 |
고대 신라에 양잠 문화가 등장한 발자취는 [삼국사기] 신라 초대 박혁거세왕 17년(BCE 41)조에 “왕이 6부를 순행하며 백성들을 위무하였다. 왕비 알령도 동행하였다. 농사일과 양잠을 권유하며 독려하였고, 농토를 잘 경작하여 생산고를 드높이게 하였다."라는 내용에서 잘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한민족의 농사일과 양잠은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시대 훨씬 아득한 옛날, 일찍이 단군왕검 개국치세 태평성대 당시부터 왕성하게 행하여졌던 것을 우리가 올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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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의 ‘한민족 조상신과 양잠신’을 모신 누에사당(蠶ノ社) |
[단군세기(檀君世紀) ‘3. 주요 신하와 치적’]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전하여오고 있다.
국조 단군왕검께서는 즉위 원년인 무진년(BCE 2333)에, “비서갑에 사는 하백의 따님을 맞이하여 왕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맡게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해졌다.”(안경전 역주『환단고기(桓檀古記)』완역본. 2011)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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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재위 93년 경자(BCE 2241)년, “이 해 3월15일에 단군왕검께서 봉정에서 붕어하시니 교외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서 장사지냈다. 모든 백성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단기’를 받들어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경배하며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 태자 부루가 즉위하였다.”고 한다.
완역본『환단고기』역주자로 저명한 안경전 석학(安耕田 碩學)은 이에 관한 해제(解題)에서 우리 한민족 소녀들의 아름다운 붉은 댕기머리에 대하여, “수천 년 동안 어린아이의 머리에 고운 비단 헝겊을 달아 주는 ‘단기(댕기)’는 바로 초대 단군왕검을 추모하여 받든 조기인 단기가 변한 것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댕기 풍속은 단군왕검의 자손임을 표시하는 생생한 증표이다.” 라고 그 유래를 알려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8일 서울 국학원에서 “일본에 전해진 한민족의 신교 문화”라는 주제로 발표된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국학과 홍윤기 석좌교수의 발표 내용을 4차례에 걸쳐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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