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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교수의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11) 갑종요시찰인

“ 차월곡, ‘갑종 요시찰인’에 편입되다 ”

 

 

식민권력의 보고서는 1910년대 월곡 차경석에 대해 ‘갑종(甲種)

요시찰인(要視察人) 명부의 표지

으로 편입(編入)’되었다고 기록했다.

곧 “차경석은 교조 강증산의 뒤를 이어 교주가 되어 교도의 신망(信望)을 얻으면서 신인(神人)으로 숭배되었고, 은밀히 교세확장의 수단으로 국권회복을 표방하기에 이르러 1917년 4월 24일 갑종 요시찰인으로 편입되었다”는 내용이다.

차월곡에 관한 1910년대의 기록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보천교의 활동이 주로 1920년대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만큼 이 기록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요시찰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요시찰’은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일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감시했던 제도였다. 요시찰인의 조사는 당연히 조선총독부가 담당했다. 그리고 시찰은 담당순사가 전담했고 필요에 따라서는 형사(刑事)순사가 맡는 경우도 있었다.

차월곡은 요시찰 대상 중에서도 ‘갑(甲)’이었다. 요즘 ‘갑질한다’의 갑인 것이다. 가장 엄중한 시찰이 이루어졌다. 요시찰 대상자는 갑호(甲號)의 경우 매월 3회 정도 시찰 받았다. 을(乙)과 병호(丙號)가 2회, 정호(丁號)가 1회 정도였다. 시찰 내용은 어느 한 방향에 치우치지 않았다.

갑(甲)종 요시찰인(要視察人)의 사례

시찰 대상자의 범죄행위 유무나 가정, 직업, 평판, 교제인물, 출입자, 여행지와 목적, 통신의 유무 등 제반 상황을 면밀히 감시·조사했다. 그러다 소재불명이 되어 3년이 경과하거나, 아니면 개전의 정이 현저하여 범죄 우려가 없으면 명부에서 삭제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이가 들어 노쇠하거나 신체에 중대한 장애가 있을 경우에도 제외 가능했다.

당시의 『조선사상통신』에도 요시찰 제도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경무국(警務局)의 눈으로 보면 사상불온(思想不穩)하던가 또는 총독정치(總督政治)에 불만을 갖고 찬성하지 않거나 또는 불만행동을 취하는 인물들이 요시찰인이라 불리웠다. 여기에는 갑(甲), 을(乙)의 두 종류로 하여 항상 그 행동을 감시하여 왔으며, 금번에 갑·을의 종류를 폐지하고 조선 전체의 명부(名簿)를 작성중이라 한다. 현재 당국의 요시찰인으로 확인되는 인물은 전(全) 조선에 전부 3천여 명에 달하며 만세소요 당시(1919년)는 약 1천 명 내외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후 점차 증가하였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였던 김철수(金綴洙)의 회고록(「김철수 친필유고」)에도 요시찰 명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서울서 동지들과 회합을 갖고 전북과 부산으로 제주까지 갔다가 다시 나와서 양산에 거주했던 와병(臥病) 중인 이규홍(李圭洪)을 찾아갔다가 체포되었다. 일본인 경부(警部)가 두꺼운 명부 책을 가지고 나를 끌어내어서 ‘전북 부안 사는 김철수지요? 우리는 취조할 권한도 없고 전북으로 가게 됩니다.’ 하면서 요시찰 명부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조선 전체를 포함한 명부가 작성되어 각 도에 배부된 사실이 확인 가능하다.

이러한 요시찰 명부의 작성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에 대한 열망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치열하게 전개된 민족해방운동의 양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던 것이다. 3.1운동 당시에는 약 1천 명의 요시찰인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1910년대에도 소수일망정 요시찰인의 존재를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식민권력, 곧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의 안정화와 영속화에 대해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치안대책의 일환에서 요시찰 대상으로 편입되었다. 총독부 경무국은 사상 불온자와 총독정치에 불만자들을 모두 요시찰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러다 점차 정치·사상·민족운동의 구분이 쉽지 않게 되면서 이들을 모두 통합시킨 명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요시찰인 선정은 경찰의 일이었다. 앞으로 위법행위, 곧 일제의 조선지배에 저항하거나 불평불만을 토로할 가능성만 보이면 대상이 되었다. 식민권력이 보기에 방법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소위 ‘불령선인(不逞鮮人)’ 곧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이었던 것이다.
 
요시찰인은 그 심각성에 따라 갑·을·병·정호로 구분하여 취급되었다. 그러나 1925년, 조선총독부가 당시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행적 등을 조사·작성한 기밀서류를 보면 종별이 갑·을 두 경우로 축소되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종별 분류는 요시찰인의 특성과 온건・과격의 정도에 따라 세분된 것이다.

그 세밀한 분류기준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이든 차월곡이 받았던 갑종 요시찰인은 시찰의 정도가 강한 측면에 속한다. 식민지배와 관련해 그 위험도나 비중 면에서 위법행위를 했거나 할 가능성이 농후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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