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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준, 식민사학의 대변인인가

 10월 25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는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렸다. 겉으로는 학문적 교류의 장이지만, 실상은 민족사학을 ‘사이비’로 매도하고 식민사학의 기치를 다시 세우려는 궐기대회였다. 주최 측은 한국고대사학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사연구회 등 이른바 ‘정통 역사학계’로 불리는 단체들이었지만, 그들의 언어와 논리는 식민사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발표하는 안정준 교수 (사진: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발표자는 안정준 서울시립대 교수였다. 그는 “극우 기반의 사이비 역사, 어떻게 진보로 둔갑했나”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독립운동가 신채호·정인보의 역사관을 계승한 민족사학을 ‘사이비’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주장은 일제 조선총독부 학자들이 만든 낙랑군 평양설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안 교수는 “낙랑군은 한 제국이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한반도 서북부에 설치되어 420년간 존속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반도를 중국의 식민지로 설정한 식민사학의 핵심 논리다. 그는 신채호와 정인보가 이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사이비 민족주의의 오염”이라 비난했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식민지였으나 자치가 있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변형일 뿐, 학문적 비판이라 부르기 어렵다.

중국의 1차 사료는 그의 주장을 부정한다. 《진서지리지》는 “한나라 때 설치한 낙랑군의 속현 수성현이 장성의 기점인 갈석산 부근에 있다”고 기록하고, 《한서》 또한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와 낙랑을 군으로 삼았다(東過碣石以玄菟樂浪為郡)”고 명시한다. 낙랑군이 처음부터 중국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마니시 류가 조작한 ‘낙랑군 교치설’을 근거로 평양설을 되풀이한다.

고고학적 근거 또한 왜곡되어 있다. 그는 ‘낙랑군현별호구부’와 ‘점재현신사비’ 등을 낙랑군 평양설의 증거로 내세웠지만, 이들 유물은 이미 일제의 조작품으로 판명된 바 있다. 세키노 다다시가 북경 유리창에서 매입해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반입한 것들이며, 2011년 SBS 스페셜 <역사전쟁, 금지된 장난>에서도 그 실체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안정준 교수는 학생들 앞에서 날조된 유물을 ‘고고학적 진실’이라 주장하고, 중국의 사료 기록을 묵살한 채 식민사학의 교리를 주입하고 있다. 학문이 아니라 선동이며, 연구가 아니라 사관의 정치다.

역사학의 기본은 1차 사료다. 이를 무시하고 조작된 유물에 의존하는 학문은 스스로 ‘사이비 역사학’이라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족사학은 사료와 문헌에 입각해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지만, 식민사학은 이미 조작된 틀에 역사를 끼워 맞춘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미래의 방향을 세우는 거울이다. 식민사관의 그림자를 되살리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배신이다. 서울대 강단에서 울려 퍼진 안정준 교수의 언어는, 지식의 목소리가 아니라 역사 왜곡의 메아리였다.

누가 진정한 역사학자인가.
1차 사료를 존중하는 자인가, 아니면 일제의 유령을 대신 말하는 자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 아니라 ‘식민사학 청산’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바로 오늘의 역사학자들에게 있다.

 

전체적인 이날 행사 내용을 보려면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http://www.koreahiti.com)를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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