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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단풍 속에서 만난 수덕사의 시간들 |
가을빛이 절정을 이루던 지난 주말, 상생문화마케팅AI학회 회원들과 예산 덕숭산 아래 자리한 수덕사를 찾았다. 맑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 아래 붉고 노랗게 타오르듯 물든 단풍은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있었고, 계절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려는 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산사로 향했다.
수덕사 경내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벌써 자리하고 있었고 수덕사를 사진에 담으려는 모습들로 분주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경내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비처럼 흩날릴 때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고,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수덕사 여승들의 청정한 수행 전통이 켜켜이 쌓아 만든 깊은 영성의 기운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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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를 찾은 상생문화마케팅AI학회 회원들 |
천 년의 세월을 한 자리에서 견뎌온 강인함과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이름 모를 끌림은 방문객들의 걸음을 저절로 멈추게 했다. 많은 이들이 전생의 인연에 의한 이끌림인듯 대웅전 앞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읍배를 한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된 고찰인 수덕사修德寺는 덕을 닦아 세상을 밝히는 산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는, 오래전 이곳에 살았다는 한 노승이 병든 이웃을 돌보고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던 자비로운 삶을 살았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명상하던 바위 주변에서 며칠간 은은한 향기와 빛이 사라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하며,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덕을 닦은 이가 세상을 비춘 자리’라 부르며 수덕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작은 암자가 세워진 것이 사찰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산세 자체가 선정에 든 수행자의 모습을 닮아 덕을 닦는 산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수덕사는 또한 한국 근현대 선불교의 중요한 흐름이 형성된 장소이기도 하다. 근대 선풍을 다시 일으킨 경허 스님을 비롯해 그의 스승 격인 수월 스님, 제자인 만공 스님으로 이어지는 선맥이 이곳에서 한 줄기를 이루었다.
특히 만공 스님은 수덕사를 중창해 한국 선불교의 핵심 도량으로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여성 수행 공동체인 수덕사 여승 전통이 본격적으로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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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성암의 전경 |
수덕사 대웅전 왼편, 본당에서 약 100미터 정도 산길을 걸으면 자리한 견성암은 바로 이 여성 승려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공간이다. 견성암은 수행자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 참선과 묵언 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된 소규모 암자였으며, 여성 승려들이 안정적으로 수행과 법맥 전수를 이어가는 중심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대웅전과 달리 은밀하고 조용한 환경은 여성 수행자들이 집중할 수 있는 독립적 도량을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수덕사는 여성 승려 공동체의 역사적 기반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근대 문학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김일엽 스님이 만공 스님을 은사로 이곳에서 출가한 사실은 수덕사의 여성 수행 역사에 깊이를 더해 준다.
이후 만공의 법맥은 태허·송담·진제 스님 등 현대 한국 선불교를 대표하는 선승들로 이어지며 오늘날 한국 참선문화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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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노 화백이 머물렀던 수덕여관의 모습 |
사찰 입구에 자리한 ‘수덕여관’은 또 다른 역사적 숨결을 지닌 곳이다. 이곳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응노 화백이 1944년부터 머무르며 작업에 몰두했던 공간으로, 전통 초가의 소박한 형태 속에서 그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잇는 독창적 화풍을 다져 갔다. 1958년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의 시간을 이 여관에서 보냈으며, 부부가 헤어져야 했던 이별의 순간이 그 공간에 고요한 흔적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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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여관 뒷편에 고암이 직접 새긴 암각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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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여관 앞에 피어난 코스모스 |
여관 앞마당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는 화백의 생애 마지막 국내 시절을 알고 있는 듯 바람 속에서 조용히 말을 거는 듯했다. 여관 뒤편에는 이응노 화백이 직접 새긴 암각화와 그가 사용했던 우물이 남아 있어, 한 예술가의 고독과 몰입이 배어 있는 시절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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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의 돌기둥도 배흘림 전통 양식이다 |
사찰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은 고려 시대 건축 양식이 온전히 보존된 귀중한 문화재다. 가운데가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흘림 기둥은 고려 목조건축의 우아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표적 요소로, 천 년 가까운 세월에도 흔들림 없이 건물을 떠받쳐 온 장인들의 지혜와 미감을 그대로 담고 있다. 대웅전에 이르는 일주문 또한 고풍스러운 고려 양식의 흔적을 간직한 채 방문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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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공 스님이 쓴 '세계일화' 편액이 청련당에 걸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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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토는 '꽃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
대웅전 왼편에 자리한 청련당에는 만공 스님이 남긴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이라는 뜻의 이 글귀는 《법화경》과 《화엄경》의 정신을 함축한 말로, 가을 단풍 사이에서 바라보면 수덕사가 지닌 고요함과 선적 기운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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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가람 배치도 |
가을빛으로 붉게 물든 수덕사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지만, 그 아래에는 수행자와 예술가가 남긴 고독과 정진, 깨달음과 한의 시간이 고요히 배어 있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선의 정신, 예술의 흔적, 여성 수행의 전통이 서로 겹겹이 쌓여온 수덕사는 지금도 ‘세계일화’의 공간으로 천천히, 그러나 깊게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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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고 빨간 단풍으로 물든 수덕사 가는 길 |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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