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9월 28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가야문화 복원을 통한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36회 국학원 정기학술회의에서 ‘임나일본부는 없었다’의 저자인 황순종 박사의 발표 내용을 7차례에 걸쳐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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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순종 박사 |
" 백제와 일본의 관계 "
백제와 일본의 주종관계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이 칠지도(七支刀)이다. 근초고대왕이 일본왕에게 보낸 칠지도의 명문(銘文)을 보면 ‘제후왕에게 내린다’는 글귀가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우에다 마사아키나 매국사학자 이병도조차 칠지도를 백제의 하사품으로 보았다. 그러나 김현구는 이병도나 우에다 마사아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에 대해서 모르는 척 함구하고, 이렇게 써 놓았다.
“징구우(신공)황후 372년 기록에도 ‘구저 등 지꾸마노 나가히꼬(千熊長彦)를 따라가서 7지도 1구, 7자경(子鏡) 1면 및 여러 가지 보물을 바쳤다.’고 했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66쪽)
김현구의 글을 보면 칠지도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황제인 진구 황후에게 바친 물건이다. 이처럼 백제의 근초고대왕이 ‘7지도 1구’를 “바쳤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쓴 사람이니 칠지도에 대한 이병도나 우에다 마사아키의 분석을 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일본서기』 찬자들은 고대 한일 관계에 대해 오히려 왜가 백제(및 신라·고구려)를 간접 지배한 것으로 윤색·조작해 놓았는데, 김현구는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른다”면서 『일본서기』만 신봉해서 “야마토정권이 백제를 통해서 임나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는 예는 4회나 확인된다.”고 써 놓았다. 김현구는 나아가 백제에서 왕녀를 보내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강조하여 이렇게 말한다.
“직지왕이 누이 신제도원을 파견한 이래 461년 곤지를 파견할 때까지는 백제의 왕녀들이 왜에 파견되는 관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제도원·직계여랑·지진원 등 이 그 왕녀들에 해당되는 것이다.” (『고대 한일교섭사의 제문제』, 167쪽)
전지대왕이 누이 신제도원을 파견한 이래 461년 곤지를 파견할 때까지는 ‘백제의 왕녀들이 왜에 파견되는 관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신제도원을 파견한 것이 428년이고 곤지가 파견된 461년까지는 33년이나 되는데 그 사이에 설사 1~2명의 왕녀가 갔다 하더라도 이것을 가지고 관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할 뿐아니라 그 후에도 그런 예가 없는데도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린단 말인가?
한편 김현구는 왕녀 이후 남자 왕족도 ‘천황을 섬기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하여, 의다랑 등의 파견도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백제 왕족들은 상국인 야마토 정권에 건너가 천황을 섬겨야 하며, 그러다가 천황의 심기에 거슬리면 지진원처럼 불에 타 죽기도 하는 파리 목숨같은 존재이다. 그래도 백제는 왕족들을 야마토에 보내야 한다. 그것이 야마토에서 고구려나 신라의 간청을 뿌리치고 백제를 간택해서 구원군을 보내준 데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김현구가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의 골자이다. 그렇다면 위에 인용한 그의 말이 사실인지 왕족이라는 의다랑 등에 대해 살펴보자.
의다랑은 부레쓰(武烈) 3년(501) 11월 조에 “백제 의다랑이 죽었다. 다카다(高田) 언덕에 장사지냈다.”는 짧막한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에, 왕족이란 근거는 없으며 그가 언제 왜 일본에 왔는지도 일체 알 수 없다. 김현구가 위에서 의다랑 등의 ‘파견’이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한 것이 거짓말임이 드러난다. 다음의 마나군과 사아군은 같은 부레쓰 6·7년에 연이어 나온다.
부레쓰 6년 10월 조에, “백제가 마나군을 보내 조(調)를 바쳤다. 천황이 백제가 몇 년 동안 조공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자를 억류하여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그 신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음 해 4월 조에, “백제왕이 사아군을 보내 조공하였다. 별도로 표(表)를 올려 ‘지난번에 조공한 사신 마나는 백제국주의 골족(骨族)이 아닙니다. 그래서 삼가 사아를 보내 조정에 봉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지난 해의 마나(군)은 골족 즉 왕족이 못 되므로 금년에 다시 왕족인 사아(군)을 보낸다고 했다. 결국 세 명 중 사아군만 왕족인 것을 김현구는 거짓으로 모두 왕족으로 둔갑시켰다. 학문이 아니라 사기요 속임수에 불과하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지금까지 논한 대로 가야사는 우리 측의 사료만을 근거로 할 수 밖에 없으며 일본의 임나 관련 내용은 가야와는 관계가 없는 일본 내의 역사에 불과하다. 고대에도 일본이 우리를 지배했다는 거짓 논리를 만들기 위해 식민사학자들이 『일본서기』의 임나를 가야로 조작하고 그곳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200년이나 다스렸다고 억지를 부렸으니 이 얼마나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인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학계의 대다수가 아직까지도 일제시대의 식민사학자들을 높이 평가하며 그들을 맹종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개탄할 상황이 전개된 이유는 한 마디로 광복 후 친일분자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들이 학계를 장악하고 독점적으로 후학을 오도해온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는 주로 재야의 민족사학자들의 진실을 밝히는 연구와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과 투쟁으로 많은 국민들이 학계의 매국적 행태를 알게 되었다.
식민사학이 공적인 차원에서 밝혀진 사례는 최근 법원의 판결에서 이루어졌다. 김현구가 자신을 식민사학자라고 비판한 이덕일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이덕일의 유죄를 인정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으나 2심과 3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 판결은 식민사관에 대한 첫 번째 판결로 그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큰 것이니, 매국적 역사관을 가진 김현구 같은 사람에게 국가에서 보호할 명예가 없다는 올바른 결정으로 사필귀정임을 국가적 차원에서 선언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가 들어서서 가야사의 복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식민주의 사관인 임나=가야 설을 폐기하지 않고는 진정한 가야사는 복원될 수 없다. 고 최재석 교수는 이미 30년 전에 임나=가야 설에 입각해 있는 김태식·김현구 등 주요 학자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비판한 바 있지만 그들은 학문적 대응을 회피한 채 매국의 길로 계속 가고 있다.
이제 뒤늦게라도 식민사학을 그만두고 학자적 양심을 되찾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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