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재일동포의 눈물, 이제 한국 사회가 들어야 할 이야기”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김웅기 교수

■ ‘빛의 혁명’의 불청객, 재일동포가 마주한 경계의 현실

2025년 여름, ‘빛의 혁명’을 선언한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취임식에 재외동포청 초청으로 참석한 재일동포들은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묵직한 이질감을 느꼈다. 일본 관서 지역의 2·3세 재일동포와 나란히 앉은 자리에는 중국 국적 동포와 미국·유럽 출신 재외국민들도 함께했다. 태극기 물결과 “대한민국 만세”의 함성 속에서도, 재외동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온 질문을 떠올렸다. “민단인가요, 조총련인가요?” 공손한 말투로 포장됐지만, 본질적으로 무례한 이 질문은 재일동포에게만 유독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철저히 ‘북’과 무관하게 살아온 이들에게까지 의심의 시선이 던져지는 것이다. 이는 분단과 냉전, 반공 체제 속에서 형성된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해방 이후에도 재일동포는 여전히 국경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로 남았다.

 

■ 경계에 선 재일동포의 삶

재일동포 문제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의 불완전한 청산에서 시작된다. 패전 직후 일본은 조선인을 일방적으로 ‘외국인’으로 규정하며 국적을 박탈했고, 한국 정부도 이들을 온전히 포용하기보다 분단 체제 속에서 관리·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1965년 한일 수교 역시 재일동포 권익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양국 정부는 국가 간 이해관계를 우선하며 동포 특수성을 외면했다. 당시 체결된 지위협정은 일본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만을 보장했고, 그마저도 한국 재외국민 등록을 조건으로 삼았다.

1990년대 초까지도 재외국민의 국내 처우 법제도는 사실상 부재했다. 주민등록번호 없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동포들이 존재했으며, 이는 곧 ‘의심받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등록제도는 ‘반공 인식표’로 작동했고, 번호가 없는 존재는 곧 국가적 의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 냉전과 반공 체제가 만든 이분법적 시선

한국 사회는 재일동포를 민단과 조총련이라는 이념적 구도로만 판단하는 경향을 지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가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층’이며, 일본 사회 안에서 시민적 삶을 이어가며 공동체를 지탱해온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이들을 단순히 이분법적 기준으로 평가했고, 독재 정권 시절 일부 재일동포 2세 청년들은 ‘정치범’ 또는 ‘간첩’으로 조작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서야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 제도적 소외와 정체성의 이중 딜레마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재외국민과 외국국적동포로 나누어 재외동포의 지위를 규정했다. 그러나 재일동포는 유일하게 태생적으로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집단으로, 다른 재외국민과 동일 범주에 묶이는 구조적 불균형을 겪는다. 여권 발급과 병역 의무 이행 등 권리와 의무 측면에서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재일동포는 사실상 ‘2등 국민’ 지위에 놓이게 된다.

실제 피해 사례도 이어졌다. 재일동포 3세 고규미 씨는 22년간 국내에서 인형극단을 운영했으나 ‘재외국민’이라는 이유로 창작 지원금 환수와 5년간 사업 지원 제한 통보를 받았다. 고 씨는 “갑자기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라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또 다른 사례로, 한국 국적 재일동포 4세 대학생은 외국인 유학생보다 더 까다로운 졸업 요건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도의 빈틈이 ‘누락된 존재’에게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 한국 사회와 재일동포, 새로운 과제

재일동포는 한국 현대사에 깊이 관여해왔다. 한국전쟁 참전, 산업단지 투자, 신한은행 설립, 포스코 건설 지원, 제주 감귤 산업 정착, 학교 설립, 88서울올림픽·IMF 시기 경제 지원 등 실질적 기여가 막대함에도, 그들의 존재는 한국사 서술에서 거의 지워져 있다. 재일동포는 주변적 존재가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또 다른 자화상이며, 이들을 통해서만 국민국가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광복 80주년과 한일 수교 60주년이 맞물린 2025년, 재일동포 문제는 한국 사회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법적·제도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과거의 불행을 되물림하지 않는 길이다. 이번 광복절에는 재일동포를 위한 대통령 메시지와 정치범 피해자 공식 사과가 발표되면서, 희망의 빛이 비추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재일동포

# 상기 내용은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에 기고한 김웅기 교수의 정책뉴스레터 칼럼인 "한일 '화해'와 '공생'의 틈새에 낀 재일동포" 글의 내용을 일부 수정 및 정리하여 게시하는 글입니다.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