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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동석 대령 |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6·25 전쟁과 이후 비밀첩보전을 통해 조국을 지킨 인물이 있다. 고(故) 김동석 대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 대령의 본관은 김해로 그는 1923년 함경북도 명천 지역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한 뒤, 전쟁과 정보전(첩보전)의 세계에 몸을 담아 대한민국의 안보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6·25전쟁 당시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참전해 북한군 15사단을 궤멸시키는 전과를 세웠다.
이후 정보참모부 소속 미군 연락장교로 발령받아 첩보 부대 활동에 뛰어들었으며, 1950년 9월에는 유엔군 사령부에 북한군의 주요 거점 정보를 전달하며, 이른바 인천상륙작전 과 서울 탈환 작전 의 성공을 견인한 핵심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사령관은 그의 사진을 가리키며 “This man(이 사람)”이라 부르며 신뢰를 드러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같은 공로로로 김동석 대령은, 대한민국 육군 대령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 가 선정한 ‘6·25 전쟁 4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첩보부대 지휘관으로 활약했고, 휴전 이후에도 동해안 일대 북파공작을 계속 지휘했다.
예편 후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여러 공직을 거쳤다는 기록도 있다. 삼척군수, 강릉시장, 속초시장, 목포시장, 수원시장 등을 역임했고, 한때는 함경북도지사직을 맡기도 했다. 또한 무도(武道)와 체육 활동에도 깊이 관여해, 대한유도회 부회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첩보전의 특성상 그의 행적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의 삭막하고 위험한 삶은 오직 가까운 가족과 일부 전우들만이 기억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숨은 공적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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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미령(본명 : 김미령), 이미지출처=TV조선 |
김동석 대령의 막내 딸은 바로 중견 가수이자 방송인인 진미령이다. 그녀는 1957년 4월 5일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미령이다.
가수로서 그녀는 1975년 영사운드 음반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트로트와 발라드 장르에서 오랜 세월 동안 활동을 이어왔다.
진미령은 과거 가수 데뷔를 결심했을 때,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이에 아버지 김동석 대령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어머니 쪽 성(외할머니 성)을 따서 예명 ‘진미령’을 택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단순한 ‘유명인의 부친’이 아니라, 한 나라의 생존과 안보를 위해 평생을 바친 ‘전쟁 영웅’이었다. 진미령은 방송에서 아버지에 대해 “늘 베개, 소파, 식탁 밑에 칼을 숨겨 놓고 지내셨다. 북한의 보복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나날이 많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때 ‘화교 출신’이라는 오해가 있었지만, 진미령의 어머니 또한 한국인이었다는 점이 밝혀졌으며, 진미령 자신도 엄연한 한국인이며 화교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예술인의 길을 걸으며, 그녀는 아버지의 힘겨운 삶과 희생을 목도했고, 대중의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그의 공적을 알리고자 노력해 왔다. 이는 단순한 ‘딸의 효심’이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려는 한 개인의 의지이자,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평화가 누구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졌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김동석 대령은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의 한반도에서 조국의 혼란을 막고, 정보전과 민족 안보의 최전선에서 싸운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비밀과 음지 속에 감추어져 있었고, 딸 진미령이 아니었다면 국민 다수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공적과 삶을 다시 한번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그의 딸 진미령이 겪었던 고민 (예술과 가족,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남긴 그림자)은 단지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과 분단의 상흔을 간직한 많은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의 개인사와 국가사는 분리될 수 없는 접점에 있었다.
고 김동석 대령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림자가 오래 남는 영웅”이었다. 그의 헌신과 희생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밑거름이다. 그리고 그의 딸 진미령은, 노래와 방송을 통해 그 밑거름을 기억으로 환원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남긴 삶의 궤적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이제 더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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