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이라는 용어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모르고 쓰는 것일까?
“경북 경산에서 원삼국 시대 고위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관묘와 청동검, 철검 등 부장품이 발견됐다.”
23일 발표된 유물,유적에 대해서 원삼국시대 것이라며 언론과 방송 일부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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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 원삼국 용어를 쓴 기사가 생산되고 있다. |
원삼국 용어는 식민사학의 잔재 용어로 폐기해야한다. 원삼국은 무엇이며 왜 폐기되어야 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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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국립박물관 원삼국실 , 현재는 없다. |
원삼국原三國時代: Proto-Three Kingdoms Period)이라는 용어는 한국고고학의 대부로 통하는 김원룡[金元龍,1922~1993]이 1972년 일본에서 펴낸 <한국고고학개론>과 73년 한국어판을 출간하면서 처음 거론하며 국내 학계에서 일반화되어 지금껏 관행처럼 사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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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룡 교수 (1922~1993) (사진=연합뉴스) |
원삼국 시대는 절대 연대로 환산하면 서기 전후에서 서기 300년 무렵까지인데 이때는 원시 삼국시대라는 것이다. 고구려가 BC 37년, 백제가 BC 18년, 신라가 BC 57년에 나라를 세웠지만 완전한 국가 체재를 이루기는 300년경에 들어서였다는 것입니다.
원삼국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나일본부설부터 이해해야한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야마토왜[大和倭]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이다. 일본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으며 중심기관이 가야에 두어진 임나일본부라는 것이다.
이 임나일본부설이 맞으려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해야 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인정하게 되면 4세기 이전에도 한반도에 강력한 왕권이 있었고 4세기의 임나일본부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에 일제 관변학자 쓰다 쏘우키치는 임나일본부를 살리려고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창안해 냈다.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일본)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쓰다 소키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 1919)
이 임나일본부설이 맞으려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해야 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인정하게 되면 4세기 이전에도 한반도에 강력한 왕권이 있었고 4세기의 임나일본부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에 일제 관변학자 쓰다 쏘우키치는 임나일본부를 살리려고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창안해 냈다.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일본)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쓰다 소키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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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국론은 AD 300년까지는 원시삼국시대라는 뜻으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임나일본부와 맥이 닿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삼국론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학설을 사실상 복제한 것에 불과하다는 저항을 꾸준히 받아왔고 1990년대 이후로 후대 발굴유물 성격과 맞지않고 시대적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면서 폐기론이 거듭 제기돼왔다.
서강대 총장을 지낸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 교수는 고고학에서 말하는 원삼국시대론이라든가,서력기원 전후부터 서기 300년 무렵까지 백제와 신라의 초기 역사를 인정하지 않은 문헌 사학계를 겨냥해 "후기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맹비판했다. 신라와 백제는 엄연히 기원전 1세기에 건국했음에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두 왕조의 실질적 건국시기를 4세기 이후로 보는 일본 식민사학을 답습한 유산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결국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4세기 이전 신라와 백제의 존재를 말살하려 한 식민사학과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2015년 8월28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고고학사’란 주제로 열린 한국상고사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고고학사에서의 원삼국시대’란 발제논문을 통해 삼불의 원삼국시대론은 식민사학자들이 1910~30년대 김해패총을 발굴한 뒤 내놓은 ‘중국 한나라, 낙랑의 영향에 따라 성립된 김해문화’라는 시대구분론을 그대로 옮긴 뒤 명칭만 바꿔 쓴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덕일 한가람 역사연구소 소장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고고학판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원삼국실(주:현재는 없음)로서 아비(삼국)를 아비라고 부르지 못했던 일제시대가 계속되는 듯한 착각이 인다. 심지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인용한 논문은 통과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상식일 정도로 사학계 주류에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도그마가 되었다”라며 원삼국설의 폐기를 꾸준히 주장해왔다.
이청규 영남대 교수(문화인류학)는 2007년 ‘한국 고대사의 시기구분’을 주제로 열린 한국 고대사학회 토론회에서 “이젠 원삼국 시대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삼국시대 전기’라는 용어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애초부터 원삼국시대는 한반도 남부에 중심을 둔 삼한시대를 대신하는 개념”이며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사의 시대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대로 <원삼국> 용어는 이 시기에 엄연한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와 한반도에는 '삼국' 이외의 수많은 국가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 시기는 결코 '삼국' 이란 좁은 사고와 틀 속에서 설명될 시기가 아니다. 당연히 '원삼국'이란 애매한 용어는 이제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언론도 이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단국대학교의 윤내현 교수는 '열국(列國)시대' 란 용어를 사용하고 제시하고 있다. 이 용어의 사용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원삼국' 이나 '삼국시대'란 용어보다는 합리적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어떤 용어로 대체되던지를 떠나서 원삼국 용어는 절대 폐지되어야 한다. 이제 언론도 이 구시대적이고 식민사학을 대변하며 적폐 용어인 원삼국을 사용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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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박물관 한국관 역사연대표에는 고조선이 없고 원삼국 표기가 되어있다. AD 300년까지는 원시 삼국이었다는 것이다. |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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