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무장독립투쟁의 맹장이자 광복군총령으로 활약한 송암 오동진(吳東振·1889~1944) 장군 순국 81주기 추모식이 1일 오전 10시 30분, 공주시 공산성 곰탑무대에서 엄수됐다.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도 50여 명의 시민과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장군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했다.
이번 행사는 공주시농민회·공주참여자치연대·민족문제연구소 공주지회의 공동 주관으로 진행됐다. 추모시 낭독, 플루트 연주, 진혼무(鎭魂舞)로 문을 열며 장군의 뜻을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어 공주시농민회, 공주참여자치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현장에 참석한 각 단체 임원들이 차례로 추도사를 전하며 “공주의 독립운동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행사의 마지막은 참석자 모두가 함께 독립군가를 부르며 장군의 희생을 기리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참석자들은 자리를 옮겨 오동석 장군 기념비 앞에서 주과포를 올려놓고, 이상표 공주시의원을 헌관으로 하여 술을 올리는 의례를 진행하며 오 장군의 넋을 위로했다.
조병진 민족문제연구소 공주지회장은 “오동진 장군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고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는 실질적 기념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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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맹장 오동진, 1만4천여 독립군을 지휘한 항일전설
송암 오동진 장군은 김좌진·김동삼과 함께 항일무장투쟁 3대 맹장으로 손꼽힌다. 일제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그는 연인원 14,149명의 독립군을 지휘해 관공서 습격 143회, 일제 관리·경찰·밀정 등 914명 처단이라는 기록적인 전과를 올린 항일전사였다.
오동진 장군은 전투와 군자금 조달로 늘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민족사의 뿌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환단고기 초간본 30권 발간을 위해 사재를 기꺼이 내놓았다. 또한 1910년대 후반 석주 이상룡과 함께 자금을 출연해 관전현 배달의숙 설립을 이끌었으며, 이곳에서 계연수·최시흥 등과 함께 학생들에게 민족혼과 조선 역사를 가르치는 등 교육·문화 독립운동에도 힘썼다.
1920년대에는 대한독립단·대한통의부·한족회 등을 통합해 조직된 광복군총영 총영장, 이후 고려혁명당 군사위원장·총사령을 맡아 만주 전역에서 치열한 항일전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 밀정의 배신으로 체포된 그는 재판정에서조차 당당히 “나는 하느님의 지시로 세계평화를 완성하기 위해 조선독립군 사령이 되었다”라고 외치며 일본인 판사와 친일 관리들을 꾸짖어 방청객을 감동시켰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7년간 옥고를 치르던 그는 일제가 부여한 ‘형무소정신병’이라는 조작된 병명으로 공주형무소에 강제 이감됐고, 결국 1944년 12월 1일, 5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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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유진 무용가(중부대 객원교수)와 플루티스트 조권행이 함께 진혼의 무대를 꾸몄다. |
조유진 무용가(중부대 객원교수)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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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유진 ,정혜경 무용가의 진혼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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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섭 전 공주시장 , 박찬석 우금티 기념사업회장, 오태근 한국예총충청남도연합회 회장,이상표 공주시 의원 등이 이날 추모식에 참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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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섭 전 공주시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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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표 공주시 의원이 대표로 오동진 장군 비석에 술을 따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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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호 사)대한사랑 학술이사가 오동진 장군 전에 술을 따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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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장군은 오늘도 공주의 겨울 하늘 아래, 만주 벌판처럼 뜨거운 항일정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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