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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맞선 공주의 청년들, ‘공주고보 학생독립운동’의 재발견

'광복의 빛이 된 청춘의 횃불’

일제강점기(대일항쟁기) 공립공주고등보통학교(공주고보) 학생들이 식민지교육에 맞서 전개한 항일학생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특별전시회가 11월 공주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억압된 교육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저항의 목소리를 내었던 ‘공주고보 학생독립운동’을 주제로, 11월 21일부터 12월 2일까지 12일간 공주고등학교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필자는 최원호 대한사랑 이사와 함께 12월 1일 오동진 장군 순국 81주기 추모식에서 김정섭 전 공주시장을 만나 인연이 닿아, 추모식를 끝낸 오후 2시 즈음 공주고등학교의 전시관을 찾게 되었다.

사진 설명 : 공주고등학교 공주동창회 김정섭 회장으로 부터 직접 전시 설명을 듣고 있다.

전시는 1922년 개교한 공립공주고등보통학교(6년제)가 해방에 이르기까지 식민지교육에 맞서 전개한 다양한 형태의 학생 독립운동을 방대한 자료와 유품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 보였다.

특히 전시장에서는 (사)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 심옥주 원장과 공주고등학교 공주동창회 김정섭 회장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두 분의 세심한 안내 덕분에 전시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공주고보 출신 국가유공자 11명을 비롯해, 충청남도교육청 연구용역을 수행한 (사)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원장 심옥주)이 새롭게 발굴한 22명의 학생독립운동가들의 활동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단일 학교 규모의 항일운동을 체계적으로 조명한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드물어, 일반 시민뿐 아니라 관내 학생·교사들에게도 큰 자긍심과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다.

공주고보는 조선인을 위한 최초이자 유일한 인문계 공립 중등학교(중·고 통합 과정)로서, 조선총독이 두 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식민지교육의 중심지였지만, 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수업거부·시험거부·동맹휴학·비밀결사·계몽운동 등을 통해 독립정신을 꿋꿋이 지켜냈다.

공주고보 학생독립운동 주요 사건 여섯 가지

1926년 6월 10일
순종 인산일에 전교생이 수업을 거부하고 유일한 조선인 교사 김대희의 인솔 아래 공산성 쌍수정에서 북향망곡을 올리며 저항.

1927년 6월
4학년 이철하 학생이 항의성 반성문을 제출하자 학교는 즉시 퇴학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6개 요구조건을 걸고 3일간 동맹휴학을 전개(14명 체포·퇴학).

1929년 12월
일본인 교사 가루베 지온 사건을 계기로 일본인 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2·3·4학년 200여 명이 7일간 동맹휴교를 벌임(6명 체포·퇴학, 1명 실형).

1932년 3월
역사(일본사) 시험에서 전교생이 백지답안을 제출(5명 퇴학). 이어 비밀결사 ‘공친회’ 학생들의 격문 배포 사건으로 졸업생 5명이 실형을 선고받음.


1935년
제9회 졸업앨범에 단기 4268년 표기와 무궁화·불사조 등을 인쇄해 배포하자 앨범준비위원 5명이 체포돼 조사를 받음.

1936년
비밀결사 ‘명랑크럽’ 8인이 일본의 패망을 목표로 노동자조직과 계몽운동을 전개하다 1942년 적발(8명 체포, 7명 실형).

전시를 주최한 공주고등학교 공주동창회 김정섭 회장(전 공주시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지역에서 광복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학생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널리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미서훈자의 국가유공자 서훈을 신속히 추진하고, 퇴학처분을 받았던 학생들의 명예졸업을 학교와 협의해 순국선열들의 명예를 되찾겠다”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공주고보 출신 독립유공자들을 정기적으로 참배하고, 그분들의 뜻을 기리는 학생독립운동 기념비를 공주고 교정에 반드시 세우고자 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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