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그녀를 ‘간첩’이라 불렀고, 프랑스는 그녀를 ‘스파이’라 의심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녀를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의 발견자, 그리고 약탈 문화재의 귀환을 이끈 숨은 영웅으로 기억한다. 프랑스로 귀화한 한국인 학자 박병선 박사의 이야기다.
박병선 박사는 유학 중이던 1967년, 조작된 간첩 사건에 휘말리며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결국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동양 고서를 관리하는 연구원으로 일하며 조국을 마음에만 품은 채 살아가야 했다.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도서관 서고에 방치된 낡은 불서(佛書) 한 권이었다. 책의 제목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역사학 전공자였던 박 박사는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 장에 적힌 문구에서 숨을 멈췄다.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자로 간행하다.” 이는 곧 그 책이 유럽이 자랑하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무려 78년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즉시 인정되지 않았다. “세계 최초는 독일”이라는 서구 학계의 선입견과, “동양인 젊은 학자가 뭘 아느냐”는 냉소가 그를 덮쳤다. 박병선 박사는 5년에 걸친 추적·검증 끝에 마침내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냈지만, 대신 “스파이”라는 오명과 함께 직장에서 해고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도서관을 떠나지 않았다. 직원도 아닌 일개 방문객 신분으로 10년 동안 도서관을 드나들며 또 하나의 한국 역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한 외규장각 의궤(儀軌)가 폐기될 위기라는 사실이었다.
박 박사는 한국 정부에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지만 냉담한 회신만 돌아왔다. 조국으로 달려가 호소할 수도 없었다. 억울한 간첩 조작 사건은 그녀를 영영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의 몸에는 이미 암이 깊숙이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학자들을 설득하고 언론과 문화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의 가장 귀한 역사서가 프랑스에서 중국 책으로 분류되어 폐기될 위기”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냈다. 그녀의 집념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2011년,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14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영구대여’라는 애매한 방식이었으나, 박병선 박사는 책들이 다시 한국 땅을 밟는 모습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그녀가 선천적으로 선택한 국적이 아닌, 마음 깊이 간직한 조국에 바치고 싶었던 마지막 헌신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 유골을 노르망디 바다에 뿌려 주세요. 그 물결이 흘러 결국 그리운 내 나라 어느 바다로 닿겠지요. 난 그렇게라도 영원히 조국에 머물고 싶습니다.”
모두가 외면했던 단 한 사람. 역사 앞에서 누구보다 고독했지만 누구보다 뜨거웠던 학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 박병선 박사이다.
최유정 기자 susan190@naver.com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