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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배우 김지미 별세… 한국 영화계의 거대한 별이 졌다
고 김지미 선생 (본명 : 김명자)

한국 영화사의 상징적 존재였던 원로 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 미국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영화계는 지난 10일 “김지미 선생이 미국 체류 중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며 깊은 슬픔 속에서 그녀의 발자취를 기리고 있다.

김지미 선생은 단순한 스타 배우가 아니었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의 거대한 파고 앞에서 거의 무너질 뻔했던 시절, 영화계는 마지막 두 개의 상영관마저 할리우드가 완전히 장악하려는 위기에 직면했다. 1990년대 후반, 이미 국내 극장 10곳 중 8곳이 미국 영화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한국 영화계는 존폐를 건 싸움에 들어갔다.

그 최전선에는 배우 김지미가 있었다. 투쟁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영화계 수호에 앞장선 그녀는, 눈물로 거리에서 싸우고 정부와 극장가 설득에 나서며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배우로서의 화려한 명성보다 ‘한국 영화’라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던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전 세계를 사로잡은 ‘오징어게임’의 시대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김지미는 17세였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해 스크린에 등장했다. 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무려 70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며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등 거장들과의 협업은 그의 연기 인생을 한층 빛냈고, 파나마국제영화제·대종상 등 국내외 주요 영화제를 휩쓴 수상 경력은 그녀가 한국 영화사의 한 축을 담당했음을 증명한다.

2010년에는 ‘화려한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그의 공적이 공식적으로 기려졌다. 나아가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영화 제작과 정책 영역에서도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뛰었다.

한국영화인협회는 “한국 영화사의 거대한 별이 졌다”며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영화계는 김지미 선생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한 시대를 개척하고 지켜낸 이 보석 같은 존재를 떠나보낸 상실감에 잠겨 있다.

반세기를 넘어 한국 영화의 뿌리를 지키고, 꽃피우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준 배우 김지미. 오늘, 우리는 거대한 영화 한 편보다 더 큰 유산을 남긴 그의 마지막 장면을 함께 바라보며 묻는다.

여러분의 기억 속 배우 김지미 선생님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최유정 기자  susan1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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