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일본땅 오사카의 시라기스(新羅洲, 신라주) "
일본 땅에는 고대에 ‘신라주(新羅洲, 1092)’라고 하는 신라인들의 옛 터전이 있었다. 신라 국가의 지명(地名)은 고지도며 각종 고문헌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고대에 신라인들이 일본 섬지역으로 대거 도래하여 그들만의 지배의 터전을 거느렸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더구나 이 고대 신라주 지역인 지금의 나카노시마 일대는 정확하게 현재의 오사카시청(大阪市役所, 北区中之島1-3-20)이 자리하는 중심가이다. 이 곳의 큰 다리인 와타나베하시(渡辺橋)도 최초의 이름은 시라기하시(新羅橋, 신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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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시라기하시(新羅橋, 신라교) 터전의 와타나베하시(渡辺橋)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흔히 고대 오사카는 백제인들 중심의 개척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고대 신라인의 옛 터전 ‘시라기스(新羅洲, 신라주)’도 11세기 <난바 옛지도(難波之古圖)1092>에 잘 나타나 있다.
오사카시립대학 사학과 나오키 코지로(直木孝次郞) 교수는 “오사카의 요도가와 강 속의 나카노시마(中之島)는 시라기스(新羅洲, 신라주) 지역이었다. 이 시라기스라는 신라인들의 큰 터전에 와타나베무라(渡辺村)가 있었다. 요도가와의 지류를 감고도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양쪽에 각기 와타나베무라가 이어져 있었다. 이 고장 시라기에(新羅江)라는 신라 강가에 살던 사람들은 신라의 왕자 천일창(天日槍)의 왕자비 아카루히매(阿迦留姬命)가 일본 오사카 난바로 도망쳐왔고 그 뒤를 쫓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오사카땅에 상륙하지 못한 천일창 일족중의 일부가 오우미(近江, 오쓰시) 쪽으로 가던 중에 여기 쳐져서 신라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바로 그 사람들의 후손들이 살게 된 고장”([大阪の新羅洲の南北渡辺村] 1971)이라고 전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밑받침하는 여러 주장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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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인들의 옛땅을 입증하는 1092년 고지도(難波之古圖)인 신라주(新羅洲, 신라국) |
신라인들의 옛땅을 입증하는 1092년 고지도(難波之古圖)인 신라주(新羅洲, 신라국)
천일창(天日槍)의 왕자비 아카루히매(阿迦留姬命)가 일본 오사카 난바로 도망쳐왔다는 그 곳 와타나베하시(渡辺橋) 건너에는 아카루히매를 제사지내주는 히매지마신사(姬島神社)가 자리 잡고 있다(大阪市西淀川区姫島). 예전에는 큰 사당이었으나 지금은 소규모의 사당으로서, 잇대어 넓직한 공원 터전으로 확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히매지마신사에서 눈길을 끌게 해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신사 입구 왼쪽 어귀에 붙어 있는 이 신사의 유래가 적힌 연혁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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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매지마신사(姬島神社) 연혁판 |
이 연혁판에는 천일창의 왕자비 아카루히매(阿迦留姬命)가 일본 오사카 난바로 도망쳐 오게 된 내력들이 전해져 온다.
그러나 필자의 눈을 끌어주는 것은 아카루히매가 이 고장 여성들에게 무명을 짜는 베틀을 크게 보급해서 직조가 성행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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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매지마신사(姬島神社) |
그녀는 이 고장 여성들에게 ‘미하바 마에가케’라고 하는 기다란 머리수건 겸 앞치마를 입혔고, 그 후 오사카 땅에는 대량의 무명 생산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었다는 것. 그런 공로로 이 고장 주민들은 그녀를 산업의 선구자로서 제사 모시게 되었고, 그녀를 찬양하는 ‘만요시가’를 지어 노래 부르게도 되었다고 한다.
이 사당 경내에는 ‘만요시가’ 비석도 서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직조 산업이 고대 한반도 신라 도래인들에 의해 오사카 땅에서 왕성하게 이루어졌던 역사를 자세하게 전해준다.
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신라인들의 왕성한 일본 진출의 발자취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하여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일본 오사카며 교토 지역에는 뚜렷한 고대 신라인들의 신주를 모셔온 웅대한 신사들이 지금까지도 어엿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교토의 ‘마쓰노오다이샤’(松尾大社)를 비롯하여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稻荷大社)’며 오사카의 ‘스미요시다이샤(住吉大社)’ 등등, 거대한 신사는 오늘에도 고대 신라신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고 있는 대형 사당들이다. 이곳들에 관하여는 앞으로 상세하게 밝히련다. 더구나 우리들이 지금까지 고대 일본하면 백제와의 교류 관계에 집중적으로 치우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 신라와 일본과의 교류는 백제나 고구려, 가야 등에 못지않게 매우 컸다는 것을 우리가 일본 속의 신라 유적지 답사를 통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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