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역사광복군」의 영상 기록은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록은 전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을 포함한 위서론자들의 주요 논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근대 용어 사용설, 단군 수명 과장설, 1970년대 창작설 등을 자료와 근거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H6NnjqBORys
특히 위서론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들이 고전 번역 방식에 대한 무지나 역사 기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환단고기가 진서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환단고기에 대한 학술 논문의 대다수가 진서로 인정하는 연구임을 밝히고, 위서론자들이 비판자를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을 지적한다.
![]() |
아래는 그 내용이다
전 국민의힘 대표였던 한동훈 씨는 어제 유튜브 라이브에서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듯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단정지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환단고기와 관련하여 주장한 내용들은 기존 위서론자들의 주장과 동일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동훈 씨가 진서론이나 위서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한 내용은 전혀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단정한 것이죠.
1. “환단고기에는 근대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에 근대 용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근대 용어라고 지적한 표현들 대부분은 이미 고전에 등장하는 용어들입니다. 이는 고전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이들의 잘못된 판단입니다.
![]() |
고대 기록을 번역하여 새로 편찬할 때에는 고전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빌려 번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단고기에 고전 용어들이 등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2. 단군의 수명이 너무 길다는 주장에 대하여
단군의 수명이 너무 길다고 주장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단군이 아니라 한국의 7대 환인의 평균 수명이 약 470년이라는 점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고전인 『황제내경』과 『설문해자』, 그리고 기독교 구약성서 등에도 고대에 수백 년을 사는 장수 시대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역시 모두 위서일까요?
만약 누군가 환단고기를 창작했다면, 굳이 이렇게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장수 시대 설정을 무리하게 넣을 이유가 있을까요? 이는 환단고기가 창작물이 아니라, 오히려 전해지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임을 시사합니다.
3. “환단고기는 1970년대 이유립이 창작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1911년 계연수 선생은 환단고기 목판본 30권을 발행하였습니다. 또한 1924년 이고선은 환단고기와 환단고기에 실린 사서들을 참고 문헌으로 하여 『심당전서』와 『성의사원』을 저술하였습니다. 현재 『심당전서』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1970년대 이유립 창작설은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판명됩니다.
![]() |
4. 다른 문헌과의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신라 하대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걸쳐 편찬된 여러 사서들을 1911년 계연수가 합본하고 ‘환단고기’라는 이름을 붙인 책입니다.
![]() |
각 사서에는 어떤 사료를 인용했는지가 명시되어 있으며, 『안함노원동중 삼성기』, 『조대기』, 『대변설』, 『표훈천사』 등의 원사료는 조선 세조·예종 대에 민간에서 간직해서는 안 되는 사서로 규정한 ‘수서령’에도 등장합니다. 이는 오히려 당시 민간에 이러한 사료들이 전해지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5. “학자들이 만장일치로 위서라고 결론 냈다”는 주장에 대하여
몇 년 전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환단고기’로 검색한 결과, 약 123편의 논문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약 90%가 환단고기를 진서로 인정하거나, 최소한 위서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연구였습니다. 학자들이 만장일치로 위서라고 결론 내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 |
6. 위서론자들을 식민사관으로 몰아붙인다는 주장에 대하여
현재 역사학계의 여러 학설 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식민사관을 기반으로 형성된 이론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학설을 비판하면 곧바로 사이비 역사학이나 환빠로 몰아붙이는 것이 그들의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 |
7. “우리가 고대에 전 세계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이는 ‘동서 이만리, 남북 만리’라는 기록을 잘못 해석한 결과입니다. 역사 지리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환단고기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낸 판타지에 불과합니다.
![]() |
당시의 거리 개념은 말이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를 기준으로 어림잡아 산정한 것입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환국의 영역은 현재의 바이칼 동쪽 일대 12개 나라로, 『진서』 사회전에 기록된 숙신의 여러 나라와 강역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환국의 종주국에서 환웅천왕이 대흥안령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와 새로 세운 나라가 신시 배달이며, 이후 신시 배달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고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신채호 선생 또한 고대의 영토 개념은 오늘날과 달리, 정치적 경계가 아니라 종교와 교화가 미치는 영역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