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8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장문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대통령이 “스스로 환빠를 선언했다”고 규정하며, 이를 “사이비 역사학과의 결탁”, “이재명식 역사 공정”, 나아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버금가는 역사 왜곡”으로까지 단정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비판을 넘어, 사실관계에 대한 오독과 학문 논의의 기본 원칙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가 학문을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중대한 문제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대통령은 “환단고기가 문헌이 아니냐”, “문헌이라면 왜 연구 대상에서 배제되느냐”고 질문했다. 이는 환단고기를 곧바로 진서로 선언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정설로 채택하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학문에서 ‘문헌’이란 곧바로 진위를 확정하는 개념이 아니다. 문헌은 연구의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결국 “연구 자체를 금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이미 판명된 사이비 역사를 연구하라고 강요했다”고 몰아가는 것은 질문의 성격 자체를 왜곡한 정치적 과잉 해석에 가깝다. 질문과 결론을 동일시하는 순간, 학문은 성립할 수 없다.
장 대표의 성명에서 반복되는 또 하나의 핵심 논리는 ‘유사역사학 대 정통사학’이라는 이분법이다. 그는 대통령이 두 영역을 같은 수준에 올려놓았다고 비난하지만, 학문은 애초에 ‘정통’이라는 정치적 호칭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정통과 비정통은 연구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지, 연구 이전에 부여되는 낙인이 아니다.
특정 사료를 두고 “연구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는 순간, 그것은 학문적 판단이 아니라 검열이 된다. 더구나 ‘사이비 역사’라는 표현은 학술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적 공격 용어에 가깝다. 논문과 토론으로 반박할 수 있는 문제를, 권위와 낙인으로 봉쇄하려는 태도야말로 반지성주의에 가깝다.
장 대표는 허성관 전 장관, 이덕일 소장, 시민단체, 민주당, 그리고 대통령을 하나의 ‘역사 왜곡 카르텔’로 엮는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실증보다는 정치적 선동에 가깝다. 이덕일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 환단고기에 대한 회의적 시각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비판과 봉쇄를 구분하지 않는 데 있다. 학설을 반박하는 방식은 연구와 공개 토론이어야지, 정치적 배제와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박진경 대령의 서훈 취소 문제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논점을 더욱 흐린다. 박진경 대령의 사례는 과거사 재조명과 국가폭력 논의의 영역에 속한 사안이다. 이를 환단고기 논쟁과 연결해 하나의 ‘좌파 역사 공정’으로 묶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들을 억지로 결합한 정치적 프레임에 불과하다. 역사는 단선적이지 않으며, 과거 국가의 판단이 언제나 최종 진실일 수도 없다. 재검토 자체를 ‘역사 뒤집기’로 낙인찍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장 대표는 성명 말미에서 “권력이 학문을 겁박하고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는 반지성주의”를 경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보여주는 현실은 정반대다. 어떤 사료는 연구해도 되고, 어떤 사료는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되며, 특정 질문을 던지는 순간 ‘사이비’로 낙인찍히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학문의 경계를 그으려는 시도다.
역사는 권력의 소유물이 아니며, 동시에 특정 학계의 전유물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역사 연구의 문을 닫자는 선언이 아니라, 열어 두고 검증하자는 태도다. ‘환단고기’ 논쟁의 본질은 진서냐 위서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연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권한을 누가 독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학문은 토론으로 이기고, 정치는 질문을 허용할 때 성숙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른 역사 지키기 TF’가 아니라,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개 토론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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