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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 이후 우리 언론 지면은 그야말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연일 비판 기사가 쏟아지고, 소위 '주류 사학계'의 권위를 빌려 대통령의 역사관을 난타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소란스러운 활극을 지켜보는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지금 언론이 보여주는 행태는 건전한 '역사 논쟁'이 아니라, 우리 언론이 가진 고질적인 병폐, 즉 '검증 없는 받아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기사들 속에서 정작 '진실을 향한 탐사'는 실종되었다.
과연 지금의 언론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읽지 않고 비판하는' 지적 태만이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는가?
현재 대다수 기사는 『환단고기』라는 텍스트 자체를 분석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사료적 가치와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그들은 가장 쉬운 길을 택한다. 이미 수십 년간 강단 사학계가 만들어놓은 "위서(僞書)"라는 단정적 결론을 비판 없이 가져와 기사의 전제로 삼는 것이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원전(原典)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타인이 내려놓은 결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비난에 가세하는 것. 이것을 과연 책임 있는 저널리즘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가.
둘째, 책상머리를 벗어난 '현장 검증'의 실종이다.
진정한 역사 검증은 결코 도서관의 낡은 책상 위에서만 완결되지 않는다. 특히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의 영역은 문헌학적 검토를 넘어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과학적 교차 검증이 필수적이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에는 단순히 책의 진위 여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에 기록된 특이한 천문 현상(예: 오성취루)이 현대 천문학 시뮬레이션으로 입증된다는 연구 결과나, 만주와 요서 지역 등 해외에서 발굴되는 홍산문화 유물들이 문헌의 내용과 부합한다는 주장 등,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반론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언론은 마땅히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발로 뛰었어야 했다. 국내외 천문학자를 찾아가 데이터를 검증하고, 필요하다면 전 세계의 관련 고고학 현장과 박물관을 직접 취재하며 주류 학계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권위 있는 교수님'의 전화 인터뷰 몇 마디로 이 모든 검증 과정을 갈음하고 있다. 직접 발로 뛰어 진실을 캐내는 수고로움 대신, 기득권의 입을 빌려 손쉽게 기사를 생산하는 '안락의자 저널리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건강한 공론장을 차단하는 '프레임 가두기'다.
현재 언론은 이 사안을 학문적 토론의 영역이 아닌, 조롱과 정쟁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있다. 주류 학설에 반하는 주장은 '유사 역사학' 혹은 '국수주의'라는 자극적인 딱지를 붙여 공론장에서 추방해버린다.
언론의 역할은 특정 학설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증거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설령 주류의 시각이라 하더라도 틀릴 수 있다는 건전한 회의감을 가지고, 그들이 외면하는 증거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수행해야 할 책무다.
지금처럼 한쪽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대변하며 다른 목소리를 '비상식'으로 매도하는 행태는, 역사 연구의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결론: 앵무새가 아닌 탐사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쏟아지는 『환단고기』 비판 기사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권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검증과 새로운 증거에 의해 다시 쓰이는 것이다. 언론이 진정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누군가의 주장을 받아쓰는 앵무새가 되기를 멈추고, 직접 진실을 파헤치는 탐사자가 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현장을 누비고, 끊임없이 의심하라. 그것이 지금 국민이 언론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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