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경량 교수는 12월 2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학설에도 선이 있는데 《환단고기》는 그 선을 세게 넘었다"며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그 '선'이란 대체 누구를 위한 선이며, 누가 그은 선인가? 역사학이 증거에 기반한 재판과 같다면, 우리는 그 재판의 '법전' 자체가 일제 강점기 식민 사관에 의해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1. '넘지 말아야 할 선'인가, '깨부수어야 할 벽'인가
기 교수가 말하는 '선'은 주류 사학계가 안전하게 안주해 온 '반도 사관'과 '소국 의식'의 경계선에 불과하다. 일제 관변 학자들이 우리 역사의 강역을 한반도로 축소하고, 상고사(上古史)를 신화의 영역으로 밀어 넣으며 그어놓은 그 '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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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그 선을 "세게 넘었다"는 비판은, 역설적으로 이 책이 주류 사학계가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우리 민족의 광활한 기상과 대륙적 위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학문적 일탈이 아니라, 거세된 민족의 혼을 되찾으려는 '역사적 월담'이다.
2. '조작'이라는 낙인 뒤에 숨은 주류 사학의 나태함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라고 단정하며 논의 자체를 봉쇄한다. 기 교수는 1979년이라는 발행 시점을 근거로 '범죄'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그러나 역사적 사료는 발견과 정리의 과정을 거친다. 뒤늦게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그 내용이 품은 민족의 기억까지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학문적 오만이다.
낙랑군 평양설 : 기 교수는 유물을 근거로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확언하지만, 이는 일제가 조작하고 심어놓은 '반도 식민 통치'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치(僑置)의 논리: 지명의 이동을 설명하는 '교치'라는 개념 또한, 대륙에 존재했던 우리 역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편리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3. 식민사학의 선을 넘어야 미래가 보인다
기 교수는 민족주의를 '파시즘'에 비유하며 경계했다. 하지만 자기 역사를 비하하고 축소하는 '자기비하적 역사관'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면역력을 해치는 독소다.
주류 사학계가 그어놓은 '식민사학의 선'은 우리 민족의 상상력과 자긍심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환단고기》가 그 선을 넘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영토와 정신을 향한 거침없는 전진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는 과정이다. 주류 사학계가 '학문의 선'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의 원형(原型)을 찾는 노력을 사이비로 몰아세울 때, 우리 역사는 영원히 조선총독부의 그림자 아래 머물 수밖에 없다. 이제는 기 교수가 말하는 그 '선'을 넘어, 더 넓은 역사적 진실의 바다로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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