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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스스로의 눈을 찌르는가: ‘환단고기’ 혐오증의 병리학과 식민사관의 그림자
한문화 타임즈 AI 이미지

지난 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 현장에서 던진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우리 사회의 잠재된 역사적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발언 직후, 정치권과 주류 강단 사학계, 그리고 다수의 언론은 일제히 조건반사적인 거부 반응을 보였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이를 “설익은 취향”이라며 정치적 공세의 소재로 삼았고, 학계는 “이미 검증이 끝난 위서”라는 낡은 도그마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그러나 이 소란스러운 소동의 이면에는 매우 기이하고도 병리적인 현상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판의 대열에 합류한 이들 대다수가 정작 비판의 대상인 원전(原典)을 단 한 번도 정독하거나, 그 안에 담긴 천문학적·고고학적 데이터를 직접 검증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학문의 영역에서 대상을 분석하지 않고 비난하는 행위는 명백한 ‘지적 직무유기’이자 기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한민국의 지성인을 자처하는 이들과 수많은 대중은 남의 역사도 아닌 내 조상의 위대한 역사를 규명하려는 시도 앞에서 이토록 처절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일까. 이 집단적 ‘역사 자해(自害)’ 현상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깊숙이 각인된 식민사관의 상처와 한국 사회 특유의 권위주의적 병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첫째, 이 현상의 기저에는 일제 식민지 교육이 남긴 ‘패배주의적 역사관’이 무의식 깊은 곳에 내재화되어 있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 “단군은 신화 속 곰의 아들이며, 한국사는 끊임없이 중국의 간섭과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형성된 타율적 역사”라고 세뇌당해 왔다. 이러한 ‘반도사관’과 ‘소국(小國) 콤플렉스’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프레임이 되었다. 중국이 황하 문명을 수천 년이라 주장하면 대국의 역사라며 수긍하고, 서구의 신화는 인문학적 소양이라며 칭송하면서도, 정작 『환단고기』가 우리 민족의 9천 년 역사와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기상을 증언하면 “우리가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며 스스로를 검열하고 비웃는다. 이는 겸손이 아니다. “우리는 위대할 수 없다”는 식민 노예의 도덕이 유전자에 각인된 결과이며,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정신적 거세 상태라 할 수 있다.

둘째,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권위 편향(Authority Bias)’과 지적 태만이 이러한 자기부정을 가속화한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교수나 국책 연구기관 등 주류 학계의 권위는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에 가깝다. 대중은 복잡한 사실 관계를 직접 따지기보다 권위자의 판단에 의존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전략을 취한다. 강단 사학계가 “환단고기는 위서”라고 판결을 내리는 순간, 대중은 비판적 사고를 정지하고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며 맹종한다. 『단군세기』에 기록된 오성취루 현상이 현대 천문학 시뮬레이션으로 입증되었다는 과학적 데이터나, 요서 지역의 홍산문화 유물이 문헌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실증적 팩트는 이 견고한 믿음 앞에서 무력화된다. 진실보다 권위를 상위에 두는 이러한 태도는 학문적 게으름을 넘어선, 주체적 사유 능력의 상실이다.

셋째, 기득권 카르텔이 구축한 교묘한 ‘낙인찍기(Stigmatization)’ 전략이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주류 사학계는 자신들의 학설에 반기를 드는 연구자나 시민들에게 ‘환빠’, ‘유사 역사학자’, ‘국수주의자’라는 멸칭을 부여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성적인 지식인들조차 저 대열에 합류하면 ‘비이성적인 광신도’로 취급받을 것이라는 사회적 공포 때문에, 침묵하거나 비난에 동조하는 ‘침묵의 나선’ 이론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진실 규명을 위한 건전한 토론을 원천 봉쇄하고, 반대 의견을 이단으로 몰아 처단했던 중세의 마녀사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강단 사학계의 격렬한 저항은 그들의 ‘매몰 비용(Sunk Cost)’과 ‘인지 부조화’ 방어 기제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식민사관에 기초한 실증사학으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평생의 권력을 향유해 왔다. 만약 『환단고기』가 진서(眞書)로 인정받고 그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가르치며 동북공정의 논리에 빌미를 제공했던 그들의 평생 업적은 하루아침에 ‘대국민 사기극’이자 매국 행위로 전락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과 기득권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실을 인정하는 고통을 감수하는 대신 눈과 귀를 닫고 진실을 외치는 자들을 공격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것은 학자의 양심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가까운 저항이다.

한동훈 전 위원장을 비롯한 정치권과 비판론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대통령의 문제 제기를 “설익은 취향”이라며 폄하했지만, 진정으로 설익은 것은 원전을 펼쳐볼 용기도 없으면서 기득권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복창하는 당신들의 가벼운 지성이다. 내 조상의 역사를 찾는 일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정신 주권’의 문제다. 남들이 가짜라고 한다고 해서, 확인도 해보지 않고 내 집 족보를 불태우는 자를 우리는 패륜아라 부른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행태가 바로 그와 다르지 않다.

이제 우리는 용기를 내어 물어야 한다. 나는 권위가 시키는 대로 생각하는 ‘식민지의 지식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검증하여 내 뿌리를 찾는 ‘역사의 주인’으로 살 것인가.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진실은 결코 다수의 조롱으로 덮을 수 없다. 두려움을 깨고 의심하라, 그리고 직접 확인하라. 그것이 진정한 역사 광복을 향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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