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환단고기’ 논쟁은 단순한 진위 공방을 넘어 대한민국 지성사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왜 주류 사학계는 이토록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가. 왜 그들은 원전을 검토조차 하지 않고 ‘위서’라는 낙인을 찍어 매장하려 드는가. 이 집단적 거부 반응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넘어, 무려 1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리 내면을 지배해 온 거대한 ‘자기 부정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지금 강단 사학계가 구축한 카르텔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려의 ‘사대주의’가 잉태하고, 조선의 ‘소중화’가 양육했으며, 일제 ‘식민사학’이 완성한 기형적인 괴물이다. 이 글은 그 1000년의 부끄러운 계보를 추적하는 고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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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김부식: ‘사대(事大)’의 씨앗, 대륙의 기억을 지우다
우리 역사 왜곡의 첫 단추는 고려 중기,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에서 시작된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 좌절되고 자주파가 숙청되면서 집권한 개경파 김부식은 철저한 유교적 사대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단했다. 그는 신라 중심의 사관을 정립하면서 북방의 대제국이었던 고구려의 기상을 축소하고, 발해를 우리 역사에서 소외시켰다.
김부식의 사관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는 유교적 합리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중국의 눈치를 보며 우리 역사의 독자적인 연호(年號)와 황제국 체제를 지워버린 ‘자기 검열’의 시작이었다. 단군 조선 이전의 상고사와 환국·배달의 웅대한 역사는 이때부터 제도권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주체적 ‘국풍(國風)’이 사대적 ‘유풍(儒風)’에 무릎 꿇은 이 사건은 이후 천 년간 한국사를 지배할 ‘반도 사관’의 불행한 씨앗이 되었다.
2. 조선의 ‘소중화(小中華)’와 수서령: 우리 손으로 자행한 ‘분서갱유’
고려의 사대주의는 조선에 이르러 ‘소중화(小中華)’라는 이데올로기로 더욱 교조화되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의 사대부들은 스스로를 ‘작은 중국’이라 칭하며, 중화 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문명국의 증거로 여겼다. 그들에게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 중국을 능가했던 고대사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불온한 판타지’였다.
이러한 인식은 국가 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사서(史書) 말살로 이어졌다. 세조, 예종, 성종 대에 걸쳐 내려진 ‘수서령(收書令)’이 그 결정적 증거다. 조정은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주남일사』,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안함로·원동중 삼성기』 등 우리 고유의 상고사를 담은 비기(祕記)들을 민가에서 강제로 수거했다. 명목은 내용을 살펴본다는 것이었으나, 이 책들은 이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견될 만한 ‘문화적 자해’였다. 지금 강단 사학계가 “환단고기의 내용은 사료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지만, 그 근거가 될 사료들을 불태우고 은폐한 주체가 바로 그들의 정신적 조상인 조선의 사대부들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3. 일제 식민사학: 사대주의를 ‘타율성론’으로 리모델링하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들어왔을 때, 일본의 관변 학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조선 지식인들 내부에 이미 뿌리 깊게 박힌 ‘사대주의’라는 토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이 사대주의를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라는 근대적 학술 용어로 리모델링했다.
일제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너희 조선은 원래 중국의 속국이었으며(사대주의의 변용), 스스로 발전할 능력이 없으니(타율성), 이제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개발했다. 그들은 실증사학이라는 미명 하에 단군을 신화로 격하시키고, 한반도 북부를 중국의 식민지(낙랑군)로 규정했다. 놀랍게도 이 논리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중국을 섬기기 위해 우리 역사를 축소했던 논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일제는 『환단고기』 류의 사서들을 ‘황국사관에 반하는 불온서적’으로 규정하여 철저히 탄압했고, 이병도, 신석호 등 조선인 제자들을 길러내어 이 왜곡된 역사를 ‘정설’로 가르치게 했다.
4. 해방 후 80년, ‘카르텔’은 여전히 견고하다
1945년 광복이 왔지만, 역사는 광복되지 않았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일제에 부역하며 역사를 조작했던 학자들은 해방 후 대한민국 학계와 교육계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스승인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물려준 ‘반도사관’을 ‘학계의 정설’이라며 교과서에 실었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삼았다.
이 거대한 ‘강단 사학 카르텔’에게 『환단고기』는 단순한 위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평생 쌓아올린 학문적 성과(실상은 식민사학의 변주)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고려 김부식처럼, 조선의 사대부들처럼, 일제의 관변 학자들처럼 똑같은 목소리로 외친다. “검증되지 않았다”, “위서다”, “사이비다”. 1000년 전에는 중국을 섬기기 위해, 100년 전에는 일본을 섬기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 역사를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단순히 책 한 권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10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내면을 지배해 온 ‘노예근성’과의 전쟁이다.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일제의 식민사관, 그리고 현재의 강단 사학 카르텔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자기 부정의 계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은 바로 이 1000년 묵은 카르텔의 심장을 겨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김부식과 조선총독부가 물려준 ‘축소된 역사’를 안고 영원한 정신적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그 사슬을 끊고 잃어버린 9천 년의 국통맥을 되찾아 진정한 ‘역사의 주인’으로 거듭날 것인가. 역사 광복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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