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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 책상에 놓여있는 환단고기 완역본 |
12월 22일은 24절기 가운데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날을 기점으로 낮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 어둠이 극에 달한 순간이 곧 빛의 회복을 알리는 출발점이라는 이 상징성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죽음이 아닌 재생, 끝이 아닌 시작으로 시간을 인식했던 것이다.
올해 동지는 음력 11월 3일에 해당하는 이른바 ‘애동지’다. 동지와 설 사이가 가까워 팥죽 대신 팥떡을 나누던 풍습이 이어져 내려오는 날이기도 하다. 작은 변화 속에서도 새 출발의 의미를 읽어내던 선조들의 시간 감각은, 오늘 우리가 처한 역사 인식의 국면과도 묘하게 겹쳐 보인다.
불과 열흘 전인 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역사 텍스트의 호명이 아니었다. 광복 이후 80년 가까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실상 봉인되어 있던 고대사 논쟁의 뚜껑을, 국가 최고 권력자의 입을 통해 다시 열어젖힌 사건이었다. 이 발언 이후 학계와 정치권, 언론을 가리지 않고 즉각적인 반발이 쏟아졌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과 소위 주류 강단사학자들은 일제히 ‘위서론’을 들고나와 대통령의 발언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단순히 환단고기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학술 논쟁이라기보다, 대한민국의 역사문화 정체성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묻는 집단적 시험대에 가깝다. 환단고기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자질을 문제 삼고, “그럴 시간이 있느냐”는 조롱이 난무하는 풍경은, 우리 사회가 고대사 문제를 얼마나 협소하고 방어적으로 다뤄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환단고기 위서론을 외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 환단고기를 읽어본 적조차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서가에 환단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기존 강단사학계의 통설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이는 학문적 검증이 아니라 학설의 계승이며, 연구가 아니라 신념에 가깝다.
왜 이렇게까지 환단고기는 논의 자체가 봉쇄되어 왔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만약 학계가 “환단고기에는 검토할 가치가 있는 상고 전승이 포함돼 있다”고 말하는 순간, 기존의 구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교과서 서술은 전면 수정돼야 하고, 수십 년간 축적된 논문과 연구 가설은 재검토 대상이 된다. 지도교수와 학맥, 학설로 이어지는 권위 체계는 약화되고, “왜 지금까지 배제해 왔는가”라는 책임의 문제가 불가피하게 제기된다. 결국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순간, 그 동안의 학문적 배제가 학문적 판단이 아니라 구조적 선택이었음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선택은 언제나 하나였다. “처음부터 논의 대상이 아니다.” 이 선언 아래 모든 카르텔은 결속되고, 위서라는 딱지는 자동적으로 붙는다. 그리고 광복 이후 80년의 시간 동안, 일반 국민들은 이를 ‘전문가의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단지 오래된 역사서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한민족의 국통맥이 있다. 그리고 한민족 1만 년에 이르는 역사 서사와 함께, 천·지·인 사상과 광명 사상,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바라보는 고유한 세계관이 담겨 있으며, 인류의 시원역사와 원형문화의 진실이 담겨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 역시, 단순한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그 근원적 정신을 묻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환단고기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상적·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지만, 동시에 빛이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은,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 이전에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것은 금기의 해제였고, 침묵의 균열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맹목적 신봉도, 자동화된 부정도 아니다. 읽고, 검토하고, 토론하는 일이다.
동지의 긴 밤을 지나며 우리는 묻는다. 대한민국은 과연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탐구할 용기가 있는 사회인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체성을 회피하지 않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오늘 이 동지는, 단지 계절의 전환이 아니라 역사 인식의 새로운 시작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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