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는 무협지다.”
딴지일보 총수이자 진보 진영의 거대 스피커인 김어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특유의 화법으로 『환단고기』를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를 ‘유사역사학’이라 매도하며 낄낄거렸다. 수많은 정치적 이슈에서 기득권의 프레임을 깨부수려 노력해 온 그가, 유독 역사 문제 앞에서만큼은 강단 사학계가 쳐놓은 ‘식민사학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선 배신감이다.
‘기득권 카르텔’과는 싸우면서, 왜 ‘역사 카르텔’에는 굴복하는가?
김어준은 그동안 검찰, 보수 언론 등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쫄지 마”라고 외쳐왔다. 우리가 알던 그는 ‘합리적 의심’의 대가였다. 그러나 그는 역사학계가 일제 강점기부터 쌓아 올린 견고한 ‘식민사학 카르텔’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합리적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일제가 조선을 영구 지배하기 위해 난도질해 놓은 반도 사관, 그리고 해방 후에도 그 학맥을 이어받아 상고사를 부정해 온 강단 사학계의 주장을 그는 검증 없이 받아들인다. 정치 검찰의 공소장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왜 식민사학자들이 써놓은 역사 교과서는 성경처럼 믿는가? 이것은 명백한 ‘지적 이중성’이자 ‘선택적 정의’다.
‘무협지’라는 발언에 담긴 천박한 역사 인식
그가 『환단고기』를 ‘무협지’라 부르는 것은, 그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만약 그가 책을 정독했다면, 그 안에 담긴 우주론과 인간관, 그리고 홍익인간의 통치 철학을 두고 감히 ‘무협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는 팩트의 나열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과 ‘혼’의 기록이다. 우리 민족의 시원과 정체성을 찾으려는 치열한 기록을 두고, 흥미 위주의 펄프 픽션 취급을 하는 것은 그의 인문학적 소양이 얼마나 얕은지를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다.
진보의 스피커가 식민사학의 숙주가 되어서야
김어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가 ‘무협지’라고 규정하면, 수많은 청취자들은 “아, 환단고기는 가짜구나”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지점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그토록 청산하고자 하는 식민잔재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가 되어버렸다.
진정한 진보란 무엇인가? 낡은 것을 타파하고 본질을 찾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뿌리를 송두리째 잘라버린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않고서 무슨 진보를 논하고, 무슨 민족의 미래를 논하겠다는 것인가.
김어준 총수에게 권한다. 남이 써준 요약본이나, 강단 사학자들의 비아냥을 앵무새처럼 읊지 말고,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환단고기』를 펼쳐보라. 당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불공정’과 ‘조작’이 우리 고대사 영역에서 어떻게 자행되어 왔는지, 당신의 그 ‘날카로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라.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역사를 조롱하는 지식인에게도 미래는 없다. 김어준의 ‘무협지’ 발언은 훗날,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가장 뼈아픈 실언”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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